최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 도로변에 노란색 대형 현수막들이 일제히 내걸렸다. 

 

낡은 다세대 주택과 소규모 공장들이 혼재된 전형적인 도농복합지역 한편에서 작업복과 등산복 차림의 고령층 주민들이 직접 사다리를 타고 앙상한 가로수에 현수막을 매달았다. 이들의 거칠고 절박한 손길은 단순한 지역 민원을 넘어, 대한민국 민간 주도 도시개발사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거주민 기본권 침해의 징후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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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용인 천리1지구 인근에서 지역 주민들이 가설 펜스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며 직접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 "통행권부터 확보하라"… 인허가권자 향한 뼈아픈 불신


주민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개발업자가 사업 구역을 획정하는 과정에서 수십 년간 이용해 온 마을 진입로와 이면도로를 차단하려는 시도에 맞서, 용인시가 개발 인허가를 내주기 전에 대체 통행로를 사전 도면에 명시하라는 것이다. 천리1지구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내걸린 이 현수막은 갈등의 책임이 단순히 이윤을 좇는 민간 개발업자를 넘어, 외형적 지역 발전에 급급해 개발업자의 편의를 봐주는 '용인시'에 있음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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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주민들이 사다리를 타고 앙상한 가로수에 "통행권부터 확보하라"는 현수막을 직접 매달고 있다. 갈등의 해결 주체로 관할 지자체인 용인시를 정면으로 지목하고 있다.)



■ 평택 지제·세교지구의 참사… 40년 마을길 폐쇄와 3,000억 원의 빚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우려를 단순한 '지역 민원'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평택 지제·세교지구에서 동일한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참혹한 파국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평택 지제·세교지구 역시 천리1지구처럼 민간 주도의 환지(Land Readjustment)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2020년 대법원의 일부 환지예정지 재지정 명령 판결을 두고 평택시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해 전체 환지 취소를 압박하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시의 억압적인 행정 처분은 조합 내부의 붕괴를 불렀고, 결국 일방적인 환지 취소로 인해 전 업무대행사와의 소송에서 패소하며 3,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짊어지게 되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행정과 법정의 서류 싸움 속에서 거주민들의 물리적 생존권이 철저히 유린당했다는 점이다. 지제동 지역 주민들이 무려 40년간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마을 안길 통행로가 사적 개발업자의 이윤을 위해 전격 차단되었다. 고령자가 다수인 원주민들에게 이는 단순한 통행의 불편을 넘어, 응급차량 진입 불가 등으로 인한 명백한 생명권 위협이었다. 


결국 평택 사태는 조합 집행부의 배임 의혹과 자금 고갈 속에서 표류하다, 중앙정부(국토교통부)가 일대를 강제 수용 방식인 '콤팩트 앤 네트워크' 공공주택지구로 묶어버리며 원주민들이 감정가에 땅을 뺏기는 또 다른 형태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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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시설물 보호를 명목으로 설치된 펜스에 결박된 비대위의 현수막. 민간 개발업자가 펜스를 무기로 물리적 소통로를 차단하고 이주를 강제하는 전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용인시는 평택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천리1지구의 펄럭이는 노란 현수막은 임박한 폭풍을 알리는 전조 경보다. 보고서는 제2의 평택 사태를 막기 위해 지자체의 강력한 행정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전(事前) 통행권 보장 조례'의 입법화다. 실시계획인가 및 착공 허가 신청 시, 기존 거주민의 이동 동선을 완벽히 대체할 우회 도로 계획과 비상대책위원회의 사전 동의서를 의무적으로 첨부하도록 조례로 강제해야 한다. 나아가 지자체의 자의적이고 재량권을 일탈한 행정 처분을 막기 위해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 주도의 독립적 행정처분 심의 기구'를 상설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도시의 땅은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투기장이기 이전에, 누군가가 매일 밥을 짓고 이웃과 소통하며 수십 년을 걸어온 '삶의 터전'이다. 용인시가 천리1지구 주민들의 외침을 묵살하고 평택시의 전철을 밟는다면, 필연적으로 지독한 소송전과 천문학적인 자금 증발, 그리고 공동체 와해라는 참혹한 결과표를 받아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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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일상적인 도로 옆으로 끊임없이 내걸린 노란 현수막. 행정관청의 선제적 조치가 없다면, 천리1지구 역시 물리적 차단과 극한 대립이라는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사진 제공: 천리1지구 비상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