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명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본 작품은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기 위한 사회비판소설입니다.
제4회: 콘크리트 장벽 앞의 사람들
1
2024년 10월의 첫째 주 화요일, 오전 7시 35분. 장수영은 아들 민준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신평초등학교까지는 도보 12분. 그 12분이 매일 아침 전쟁이었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공사장 가림막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가림막 안쪽에서 콘크리트 타설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레미콘 차량 한 대가 가림막 옆 임시 진입로를 통해 빠져나오고 있었다. 장수영은 민준이를 자기 쪽으로 바짝 당겼다.
"엄마, 아파."
"미안. 잠깐만."
레미콘이 지나간 뒤 도로를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횡단보도는 200미터 아래에 있었다. 대림아파트 정문에서 신평초등학교로 가려면 그 횡단보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그러면 등교 시간이 25분으로 늘어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로를 무단횡단했다. 아이 손을 잡고.
도로 중앙에 서서 좌우를 살폈다. 한양뉴타워 지식센터 방면에서 차량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불법유턴을 했다. 타이어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장수영은 민준이를 안아 들고 뛰었다.
도로변 가로등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
교통사고 다발구역 — 보행자 주의
이 구간에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세 개 걸려 있었다. 장수영은 세 개 모두의 위치를 외우고 있었다. 한양뉴타워 앞, 공사장 진입로 옆, 그리고 신평초 후문 근처. 세 개의 현수막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였다. 이 길이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그 위험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
신평초 정문에 도착하자 민준이가 장수영의 손을 빼며 뛰어 들어갔다. 장수영은 교문 앞에 잠시 서서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교문 옆 게시판에 학부모회 명의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학부모님께 알립니다
서현3지구 공사 차량 증가로 등하교 시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반드시 횡단보도를 이용해주세요.
장수영은 그 안내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횡단보도를 이용하라. 200미터를 돌아가라. 공사를 허가한 것은 시청이고, 안전을 책임지라는 것은 학부모에게. 이것이 영현시의 방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사장 가림막 위로 타워크레인이 철골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지상 5층까지 골조가 올라와 있었다. 완공되면 22층. 장수영은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5층만으로도 이미 아파트 4706동의 저층부 해가 차단되기 시작했다. 1층에서 3층까지는 오전 10시가 넘어야 겨우 햇빛이 들었다. 22층이 완성되면 14층인 자기 집도 예외가 아닐 터였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던 남교산 능선.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던 그 풍경 대신, 콘크리트 벽이 하늘을 가를 것이다.
장수영은 집으로 돌아와 부엌 식탁 위에 쌓아놓은 서류 뭉치를 들여다보았다. 주민 탄원서 초안, 국민신문고 민원 접수 확인증, 국민권익위원회 진정서 양식. 석 달째 쌓이고만 있는 종이들이었다.
2
10월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남교서현 대림아파트 주민센터 2층 회의실. 영현시 도시개발과 주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회의실은 접이식 의자 80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62개가 채워져 있었다. 대림아파트 주민이 대다수였고, 남교 파크빌 4612동과 4613동 주민도 스무 명 남짓 왔다. 뒷줄에는 김도형과 박은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단상에는 도시개발과 한재민 과장과 실무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프로젝터가 켜졌다. 첫 번째 슬라이드.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 주민설명회
영현시 도시개발과
한재민 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도시개발과장 한재민입니다. 오늘 설명회는 서현3지구 사업의 현황과 기부채납 계획에 대해 설명드리고 주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사업 개요, 배치도, 기부채납 내역.
"사업자는 기부채납으로 총 48억 원 상당의 기반시설을 영현시에 기부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소공원 2,550제곱미터 조성, 진입도로 확포장, 보행자 전용도로 신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재민이 레이저 포인터로 배치도를 가리켰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소공원이었다.
"공원은 기존 주민분들도 이용하실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설계됩니다."
그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60대 남성이 손을 들지 않고 말했다.
"잠깐요. 공원이 어디 있다고요?"
한재민이 다시 레이저 포인터를 비추었다.
"여기, 신축 건물 남쪽입니다."
"그거 우리 아파트 반대편이잖아.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 있어요?"
회의실이 술렁였다. 한재민이 말을 이었다.
"공원의 위치는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
"그 심의위원회에 우리 주민 대표가 있었어요?"
한재민이 잠시 침묵했다.
"심의위원은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됩니다."
회의실 중간쯤에 앉아 있던 파크빌 주민이 일어섰다.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저는 남교 파크빌 4612동에 사는데요. 우리 동은 차량 진입로하고 보행로가 뒷베란다 쪽, 그러니까 북쪽으로 나 있어요. 지금도 주차장 출입 차량 소음이 심한데, 여기에 22층짜리 건물이 서면 우리 뒷베란다가 완전히 들여다보이거든요. 사생활 침해 문제는 검토하셨어요?"
한재민이 실무자와 잠시 귓속말을 나누었다.
"배치 계획상 건물 간 이격거리는 법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법적 기준이 얼마예요?"
"건축법상 채광 방향 인접 대지 경계선까지 높이의 0.5배 이상—"
"아니, 숫자로 말해주세요. 우리 집에서 저 건물까지 몇 미터예요?"
실무자가 서류를 뒤적였다.
"약 8미터입니다."
회의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꺼번에 터졌다.
"8미터요? 8미터에 22층?"
"그게 법적으로 된다고요?"
"거실 두 개 폭이잖아!"

22층 신축 건물과 기존 아파트 사이의 거리는 8미터. 주민들은 콘크리트 장벽 앞에서 일조권과 조망권을 호소했다. (이미지=경인블루저널)
장수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A4 용지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발언문이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또박또박 읽었다.
"저는 대림아파트 4706동 14층에 삽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공사 현장까지 직선거리 8미터입니다. 지금 5층까지 올라왔는데, 벌써 오전 해가 안 듭니다. 22층이 다 올라가면 우리 집은 겨울 내내 해를 못 봅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신평초등학교 통학로에 횡단보도도 없고, 공사 차량이 매일 아침 아이들 등교 시간에 드나듭니다. 교통사고 다발구역 현수막이 세 개나 걸려 있는 도로입니다."
장수영이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기부채납 48억이라고 하셨는데요. 소공원 2,550제곱미터요. 우리 일조권은 얼마예요? 우리 조망권은 얼마예요? 우리가 산과 하늘이 보여서, 그 풍경이 좋아서 대출 끌어안고 산 집이에요. 그 값은 누가 쳐줍니까?"
한재민 과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주민 여러분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말씀드린 것처럼 법적 절차를 모두 거쳐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라—"
뒷줄에서 고함이 터졌다.
"법, 법, 법! 법이 다예요? 사람이 사는 건 생각 안 합니까?"
한재민이 입술을 다물었다. 실무자가 옆에서 뭔가를 귀띔했다. 한재민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의 의견은 기록하여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습니다. 소통협의체를 구성하여 지속적으로—"
"소통협의체가 뭔데요? 그거 하면 공사 멈춰요?"
한재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설명회는 예정된 90분 중 40분 만에 사실상 끝났다. 나머지 50분은 주민들의 항의와 한재민의 반복적 답변 — "법적으로 문제없습니다"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습니다" "소통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겠습니다" — 이 돌고 돌았다.
장수영은 설명회가 끝난 뒤 복도에서 한재민을 붙잡았다.
"과장님, 저 시의회에 가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의원님들한테 직접. 방법이 있나요?"
한재민이 잠시 장수영을 바라보았다.
"시의회 방청은 가능하십니다. 다만 본회의나 위원회에서의 주민 발언은... 대의제 원칙상 통상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희 이야기는 누가 해주는 건데요?"
한재민이 대답하지 못했다.
3
장수영은 시의회에 갔다. 영현시의회 건물 3층 방청석. 도시건설위원회 회의를 방청하기 위해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았다. 방청석에 앉으니 아래로 회의장이 내려다보였다. 반원형 테이블에 위원들이 앉아 있었고, 증인석에 시 공무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장수영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안내 데스크에서 물었다.
"혹시 주민이 발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서현3지구 사업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안내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위원회 회의에서 주민 발언은 위원장이 허가해야 하는데요. 사전에 서면으로 발언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장수영은 그 자리에서 발언 신청서를 작성했다. 용건란에 적었다: '서현3지구 공동주택 건립으로 인한 인근 주민 피해 호소'. 직원이 신청서를 받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5분 뒤 돌아왔다.
"죄송한데요. 오늘 안건에 서현3지구 관련 건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요. 위원장님께서 발언 허가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능한 건가요?"
"해당 안건이 위원회에 상정되면 그때 다시 신청하시면 됩니다."
"안건이 언제 상정되는데요?"
"그건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장수영은 방청석에 앉아 2시간 동안 회의를 지켜보았다. 서현3지구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상하수도 정비 예산, 도시공원 벤치 교체 건, 주차장 확충 계획. 장수영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안건들이 차분하게 토의되고 의결되었다.
2주 뒤, 장수영의 집 우편함에 영현시 도시개발과 명의의 공문이 한 통 왔다.
소통협의체 구성 안내
서현3지구 공동주택 건립사업과 관련하여, 인근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아래와 같이 소통협의체를 구성하오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구성: 영현시 도시개발과, 사업시행자(경기도시주택공사), 인근 아파트 입주자대표 각 1인
2. 기능: 공사 관련 민원 접수, 생활 불편사항 논의
3. 단, 본 협의체는 사업의 가부(可否)를 결정하거나 논의하는 기구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장수영은 그 공문을 세 번 읽었다.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거나 논의하는 기구가 아님.' 소통은 하되 결정은 바뀌지 않는다. 의견은 듣되 반영하지 않는다. 이름은 '소통협의체'인데 실질은 '통보확인기구'였다.
장수영은 A4 용지에 적어 두었던 민원 목록을 다시 꺼냈다. 국민신문고 민원 1건, 경기도청 민원 1건, 국민권익위원회 진정 1건. 모두 접수는 되었으나 회신은 같았다. '해당 사업은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사무로서 중앙행정기관의 개입이 제한됩니다.'
장수영은 커뮤니티 카페에 글을 올렸다. 대림아파트 주민 카페, 파크빌 주민 카페, 서현동 지역 카페. 같은 내용을 복사해 붙였다.
서현3지구 공동주택 피해 주민 집단 탄원서를 작성하려 합니다.
일조권 침해, 조망권 박탈, 통학로 안전, 교통 문제, 소음·분진 피해.
동의하시는 분은 동·호수와 성함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일주일 만에 서명이 347명 모였다. 대림아파트 4706동뿐 아니라 4705동, 4707동 주민들, 파크빌 4612동과 4613동 주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민원 원문에는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 "산과 하늘이 안 보입니다."
— "삶의 질이 치명적으로 떨어졌습니다."
— "저층부는 반지하화가 예상됩니다."
— "건축물 손상이 우려됩니다. 지반 공사 때 진동이 심해서 벽에 금이 갔습니다."
장수영은 347명의 이름이 적힌 탄원서를 들고 다시 시청을 찾았다. 민원실 직원이 탄원서를 접수하며 말했다.
"접수는 하겠습니다. 다만 처리기간이 좀 걸릴 수 있어요."
"얼마나요?"
"60일 이내입니다."
장수영은 시청 로비를 나서며 생각했다. 60일이면 공사는 10층 이상 올라갈 것이다.
4
2024년 11월 12일, 영현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제277회 행정사무감사.
조현택 시의원은 감사장에 일찍 도착했다. 질의 자료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A4 용지 열여섯 장. 김도형에게서 받은 토지대장 분석 자료, 도시계획 변경 이력, 예산 편성 내역. 한 달 전 영현시민연대 사무실에서 김도형, 박은지와 세 시간 동안 자료를 검토한 끝에 정리한 질의서였다.
조현택은 3선 시의원이었다. 도시건설위원회 소속. 다수당이 아니었고 의장단에 속하지도 않았다. 시의회에서 그의 위치는 주변부에 가까웠다. 그러나 행정사무감사에서만큼은 질의권이 보장되었다.
도시개발과장 한재민이 증인석에 앉았다. 감사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순서에 따라 각 위원의 질의가 이어졌다. 예산 집행률, 도시공원 관리 현황, 재개발 사업 진척도. 통상적인 감사 질의가 두 시간가량 이어진 뒤, 조현택의 차례가 왔다.
"도시개발과장님께 질의하겠습니다."
한재민이 자세를 바로 했다.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 건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해당 부지는 원래 자연녹지지역이었습니다. 그것이 현재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되어 22층 공동주택 건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과장님, 이 용도지역 변경이 몇 단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까?"
한재민이 답했다.
"자연녹지에서 보전녹지, 보전녹지에서 제1종일반주거, 제1종에서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4단계 종상향입니다. 과장님, 해당 부지에 대한 용도지역 변경 요청이 처음 접수된 것이 언제입니까?"
한재민이 서류를 넘겼다.
"최초 변경 요청은 2014년경으로 확인됩니다."
"2014년.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해당 부지의 완충녹지 해제 요청이 수차례 있었지만 모두 반려 또는 보류되었습니다. 맞습니까?"
"세부 이력은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완충녹지 해제가 쉽지 않았던 것은 맞습니다."
조현택이 자료를 들어 보였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2014년, 2016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완충녹지 해제 및 용도변경 요청이 있었고, 모두 '주변 환경 영향' '교통 대책 미비' 등의 사유로 반려되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 네 번째 요청에서 갑자기 통과됐습니다. 과장님, 10년 동안 안 되던 것이 왜 갑자기 된 겁니까?"
한재민이 잠시 침묵했다. 감사장 안이 조용해졌다.
"2023년 요청 시에는 맹지화 해소 차원에서 진입도로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고, 기부채납 조건이 강화되었습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맹지화 해소요. 과장님, 그 맹지라는 것이 원래부터 맹지였습니다. 완충녹지가 있으니까 도로 접근이 안 되어서 맹지인 거죠. 맹지화 해소를 위해 완충녹지를 해제한다, 이건 순환논리 아닙니까? 완충녹지가 있어서 맹지이고, 맹지니까 완충녹지를 없앤다?"
한재민이 답변하지 못했다. 조현택이 이어 물었다.
"다음 질의입니다. 해당 부지의 4단계 종상향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는 실시했습니까?"
한재민이 답했다.
"해당 사업 규모상 환경영향평가 대상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규모상 해당되지 않는다. 자연녹지를 밀어내고 22층 아파트 203세대를 짓는데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까?"
"법적 기준에 따르면 면적 기준 등이 있어서—"
"그 법적 기준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교산 인접 자연녹지에 고층 건축물이 들어서면 바람길 차단, 생태계 단절, 우수 유출량 증가 등이 예상되는데, 최소한 자체적인 환경 검토라도 하셨습니까?"
"관련 부서와 협의는 거쳤습니다."
"협의 결과를 공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부 검토 자료라 공개가 어렵습니다."
조현택이 다음 자료를 꺼냈다.
"과장님,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2022년 6월, 서현3지구 인근에 350평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건축 허가 신청이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올라왔습니다. 결과는 부결이었습니다. 사유가 뭐였습니까?"
한재민이 서류를 넘겼다. 시간이 걸렸다.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적사업의 진위에 대한 의심이 있고, 해당 지역에 근린생활시설의 추가 수요가 불명확하다'는 사유였습니다. 350평짜리 근린생활시설은 목적사업의 진위를 의심받아 부결되었는데, 수만 평에 달하는 부지의 4단계 종상향은 통과됐습니다. 같은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과장님, 이 이중잣대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한재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 앉은 실무자가 서류를 건넸다. 한재민이 그것을 읽는 동안 조현택이 다시 말했다.
"답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록에 남으니까."
감사위원장이 조현택에게 남은 질의 시간을 알렸다. 조현택이 마지막 질의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서현3지구 부지의 토지 소유 현황에 대해 도시개발과에서 파악하고 계십니까?"
"사업시행자인 경기도시주택공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토지 소유자 중에 영현시의회 관계자나 그 가족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신 적 있습니까?"
회의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한재민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도시개발과에서 토지 소유자의 개인적 배경까지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확인하지 않는다.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는 건지, 확인하면 안 됐다는 건지, 어느 쪽입니까?"
한재민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잠시 후 말했다.
"그 부분은... 확인하겠습니다."
"확인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조현택은 자료를 정리하며 방청석을 올려다보았다. 장수영이 앉아 있었다. 탄원서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조현택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5
감사가 끝난 다음 날 저녁, 영현시민연대 사무실. 김도형이 박은지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은지 씨, 이거 봐."
화면에는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이 나란히 열려 있었다. 신평초등학교 뒤편 자투리땅. 면적 약 600제곱미터.
"이 땅이 원래 누구 명의였게?"
박은지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문병도."
"맞아. 문 의장 아버지. 서현3지구 부지 최대 소유자."
김도형이 마우스를 움직여 등기 이력을 보여주었다.
"2017년에 문병도 명의에서 다른 사람들 명의로 지분이 쪼개졌어. 세 명. 이름을 봐."
화면에 세 개의 이름이 나타났다. 모두 서현동 거주자. 김도형이 추가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엑셀 파일을 열었다.
"이 세 사람, 전부 서현동 통장이거나 통장이었던 사람들이야."
"통장이요? 동네 통장?"
"응.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문 의장하고 지역 기반이 겹치는 사람들이지."
박은지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차명이라는 말씀이세요?"
"단정은 못 하지. 그런데 패턴이 있어."
김도형이 화이트보드에 순서를 적기 시작했다.
1단계: 맹지 또는 자투리땅 헐값 매입
맹지, 도로 불접도, 비정형 필지. 땅값이 바닥인 토지를 선점.
2단계: 차명으로 지분 분산
지역 통장이나 지인 명의로 소유권을 나눔. 한 사람의 이름이 토지대장에 반복 등장하는 것을 방지.
3단계: 관제 민원으로 '공원화' 요청
해당 자투리땅을 "주민 편의를 위해 공원으로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접수됨. 민원인은 해당 토지의 실소유자와 관련된 사람들.
4단계: 시 예산으로 매입 압박
"공원으로 쓰려면 시에서 매수해야 한다"는 논리. 당초 10억 원이었던 예산이 공원 설계 변경, 부지 확대 등을 이유로 45억 원까지 불어남.
5단계: 상급 기관까지 로비
경기도청에까지 "주민 편의시설 확충"이라는 명목으로 예산 지원 요청.
박은지가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서현3지구하고 같은 수법이잖아요."
"그래. 맹지를 매입하고, 용도변경이나 공원화를 통해 땅값을 올리거나 시 예산으로 매입하게 만드는 거야. 서현3지구는 규모가 크니까 4단계 종상향이라는 방법을 썼고, 신평초 자투리땅은 공원화 예산을 통해 돈을 빼는 방식이지."
김도형이 화이트보드 한쪽에 큰 글씨로 적었다.
패턴화된 수법. 상습적.
"문제는 증거야.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은 공적 자료니까 증거 능력이 있어. 그런데 '차명'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자금 흐름을 봐야 해. 매입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건 금융거래 기록이니까 수사기관이 아니면 확인이 안 돼."
박은지가 물었다.
"수사 의뢰를 하면요?"
"경찰에 고발하려면 혐의를 특정해야 하는데, 현재 자료로는 '의혹' 수준이야. 의혹만으로 수사가 시작되려면 언론이 다뤄주든, 감사원이 움직이든, 외부 압력이 필요해."
김도형이 의자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조현택 의원이 어제 감사에서 잘 해줬어. 한재민 과장이 '확인하겠다'고 했으니까 공식 기록에 남았어. 의원이 이해충돌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거지. 다음은 조 의원을 통해 토지 소유 현황 자료를 공식 요구하는 거야. 행정사무감사 자료 요구는 시의원의 권한이니까."
박은지가 신평초 자투리땅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
"김 대표님, 이 패턴을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까요? 서현3지구 건하고 신평초 건을 나란히 놓으면 패턴이 확실히 보일 텐데."
"그래. 타임라인으로 정리하자. 토지 취득 시점, 명의 변동, 도시계획 변경 시점, 의회 의결 시점. 이걸 나란히 놓으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림이 나올 거야."
6
11월의 마지막 날 밤. 장수영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
공사장에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야간 작업은 아니었다. 안전등이었다. 골조가 올라간 건물의 윤곽이 조명 아래 드러나 있었다. 8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10월에 5층이었으니 한 달에 세 개 층씩 올라간 셈이었다. 이 속도라면 내년 초에는 벌써 열몇 층이 될 것이다.
남편이 뒤에서 다가왔다.
"또 거기 서 있어?"
"응."
"들어와. 밖에 추워."
장수영이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이 옆에 나란히 섰다.
"오늘 탄원서 결과 나왔어?"
"아직. 60일이래."
"언제 접수했는데?"
"10월 말."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조현택 의원이 감사에서 질의한 건 어떻게 됐어?"
"김도형 대표님이 그러는데, 기록에 남긴 했는데 당장 뭐가 바뀌진 않을 거래. 시의회 감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
바람이 불었다. 11월 바람은 차가웠다. 공사장 조명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장수영은 올려다보았다. 8층 골조 위로 타워크레인의 붉은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아직은 보였다. 골조가 아직 14층까지 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매일 세 개 층씩 올라가는 콘크리트 벽은 곧 그 하늘마저 지울 것이다.
장수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응."
"저 불빛이 꺼지면... 우린 영원히 하늘을 잃는 거야."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베란다 아래로 도로가 보였다. 교통사고 다발구역 현수막의 노란 바탕이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민준이 손을 잡고 그 도로를 건너야 한다.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공사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현수막 세 개가 걸려 있는 그 도로를.
장수영은 베란다 난간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부엌 식탁 위에는 내일 제출할 국민권익위원회 추가 진정서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347명의 서명이 적힌 탄원서 사본이, 그 옆에는 조현택 의원 사무실에 전달할 추가 자료가 놓여 있었다.
종이의 무게는 가벼웠다. 그러나 그 종이들이 의미하는 것 — 347명이 자기 이름을 적었다는 것,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 의 무게는 달랐다.
콘크리트 벽은 매일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아직은 꺼지지 않았다.
제5회에 계속
[편집자 주] 용어 해설
1. 이격거리(離隔距離)
건축물과 건축물, 또는 건축물과 대지 경계선 사이의 수평 거리. 「건축법」은 채광·통풍·사생활 보호를 위해 최소 이격거리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법적 최소치만 충족하면 허가가 나기 때문에 인접 주민의 일조권·조망권 침해가 빈번히 발생한다. 본문의 '8미터'는 14층 주거공간에서 22층 건물을 바로 마주하게 되는 거리로, 생활 체감상 극도로 가까운 수치다.
2. 행정사무감사(行政事務監査)
지방의회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사무 전반에 대해 실시하는 감사. 지방의원에게 자료 요구권, 증인 출석 요구권, 질의권이 부여된다. 통상 연 1회 실시하며, 집행부 공무원이 증인석에 앉아 의원의 질의에 답변해야 한다. 다만 감사 결과의 법적 구속력은 제한적이어서 '형식적 감사'라는 비판도 있다.
3. 소통협의체
개발사업 시행 시 인근 주민과의 갈등 관리를 위해 구성하는 협의 기구.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사업의 변경·중단 권한이 없는 자문적 성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문에서처럼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거나 논의하지 않는다'고 명시되는 경우, 실질적인 주민 참여 보장 장치로서의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다.
4.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의 권리 보호와 부패 방지를 위해 설치된 중앙행정기관.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한 고충민원을 처리하고, 공익신고 접수 및 보호 업무를 수행한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사무와 같은 고유 사무에 대해서는 개입 권한에 한계가 있어, 민원인이 실효적 구제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5. 차명(借名) 거래
타인의 이름(명의)을 빌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행위.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위반 시 과징금 부과 및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가족 간 명의 분산, 지인 명의를 이용한 지분 쪼개기 등은 외형상 정상 거래와 구분이 어려워 적발이 쉽지 않다. 입증을 위해서는 자금 흐름 추적이 필수적이므로 수사기관의 개입 없이는 확인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