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의 분배는 오랫동안 '노동과 고용'을 매개로 이루어져 왔다. 기술 발전이 노동 생산성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임금이 올라 사회 전체의 부가 증대된다는 것이 전통적 경제학의 암묵적 합의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 혁명은 이러한 분배 패러다임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파열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은 1947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 53.8%~54.1% 수준으로 급락하며 심각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우리의 분배 시스템은 과연 안녕한가.
미시적 이익공유의 한계와 심화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최근 삼성전자 노조를 중심으로 촉발된 초과이익성과급(OPI) 갈등은 AI 산업이 창출한 막대한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미시적 충돌의 징후를 명확히 보여준다.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이 수억 원대의 막대한 성과급을 받는 합의안이 도출되었지만, 이 화려한 잔치 이면에는 거대한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 실적이 저조한 타 계열사 노동자들의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하여 연쇄적인 보상 확대 요구와 내부 분열을 야기했다.
* 원청 대기업 정규직의 초과이윤 독식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하청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희생 등 '사회적 총노동(Social Total Labor)'의 가치를 철저히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 결국 개별 기업 단위의 분배는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상 기회를 빼앗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대화하고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거시적 이익공유의 부상과 '국민배당금' 논쟁
이러한 미시적 교섭의 한계 속에서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거시적 이익공유'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이 화두를 던진 '국민배당금'은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결코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날카로운 통찰에서 출발한다. 알고리즘 고도화를 위해 제공된 방대한 국민의 데이터와 국가 주도의 인프라 등 막대한 사회적 간접자본이 초과이윤의 근간이 되었으므로, 이를 합법적인 조세 시스템을 통한 '초과세수'로 환원하여 전 국민에게 배당하자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경기도가 입증한 대안적 배당 모델의 실증 사례다. 경기도는 도민들이 사용한 지역화폐 데이터를 유상으로 거래해 발생한 수익을 도민 1인당 120원씩 균등하게 지급하는 세계 최초의 '데이터 배당' 정책을 실행한 바 있다. 비록 상징적인 금액이었으나, 이는 국민이 단순한 데이터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권리를 인정받고 경제적 가치를 정당하게 배당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 혁신적 거버넌스였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조적 파탄과 새로운 대안
그러나 시대가 이토록 거시적 대타협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핵심 임금 결정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낡은 '빈곤선 방어' 프레임에 갇혀 시대착오적 공방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 현행 제도는 시간 단위 근로를 전제로 설계되어 배달 라이더, 데이터 라벨러 등 파편화된 플랫폼 종사자들을 보호망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 AI 대기업이 막대한 부를 쌓을 때, 최저임금 인상의 비용은 경제 구조 밑바닥의 영세 소상공인에게 전가되어 을(乙)과 병(丙)의 잔혹한 생존 투쟁만을 강요하고 있다.
* 정부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익위원이 주도하는 영점합(Zero-sum) 의사결정 구조는 숙의 민주주의 기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민이익공유 및 노동위원회'로의 거시적 대개혁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소모적인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체제에 머무를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이를 해체하고, 네덜란드의 사회경제협의회(SER) 모델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국가 전체의 부를 조율하는 (가칭)'국민이익공유 및 노동위원회(NCPSL)'를 즉각 발족해야 한다.
새로운 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자와 거대 기술 기업 등 다원화된 주체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로 확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다음과 같이 조세, 복지, 임금을 융합한 3단계 분배 포트폴리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1. 다층적 최저임금 체계 구축: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 건수별, 데이터 라벨링 단위별 표준 단가를 산정하여 기초 노동 조건을 두텁게 방어한다.
2. 노동 연계형 소득 보전: 근로장려세제(EITC)를 대폭 상향하여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저임금 노동 가구의 생계를 국가 재정으로 정밀하게 보전한다.
3. 보편적 국민 배당 신설: AI 산업 호황으로 확충된 초과세수를 '(가칭)국가 혁신공유기금'으로 편입시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국민의 기초적 소비 여력을 담보할 보편적 지분 수익으로 환원한다.
기술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수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해방하고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다. 더 이상 미시적 파이를 두고 벌이는 지엽적 투쟁에 국력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다가오는 AI 시대의 거친 파도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거시적 이익공유라는 웅대한 사회 대개혁의 닻을 지금 당장 올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