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명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본 작품은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기 위한 사회비판소설입니다.
제3회: 3초의 거래
1
2024년 11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영현시청 5층 시장실.
배정호 시장은 넓은 참나무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뭉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류 첫 장에는 '영현시 조직개편안 — 제3차 수정(안)'이라는 제목이 붉은 글씨로 찍혀 있었다. 그 아래에 누군가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놓은 문장이 있었다.
신설: 안전총괄과, 자치분권과, 스마트도시과
증원: 일반직 공무원 87명 (6급 이하)
소요예산: 연간 약 68억 원
배정호는 그 숫자를 읽다가 서류를 뒤집었다. 다음 장에는 상임위원회 — 자치행정위원회 — 의 심의 경과가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 회차 | 일자 | 결과 |
| 1차 | 2024. 2. 15. | 부결 (찬성 2, 반대 5) |
| 2차 | 2024. 4. 22. | 부결 (찬성 3, 반대 4) |
| 3차 | 2024. 6. 10. | 보류 (출석 미달) |
| 4차 | 2024. 8. 5. | 부결 (찬성 3, 반대 4) |
| 5차 | 2024. 9. 23. | 부결 (찬성 2, 반대 5) |
다섯 번의 시도, 다섯 번의 실패. 2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배정호는 서류를 덮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창밖으로 영현시청 광장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그러나 배정호의 마음에 가을은 없었다.
조직개편안은 배정호의 핵심 공약이었다. "공무원이 충분해야 시민 서비스가 좋아집니다." 선거 때 유권자들 앞에서 수백 번 말한 문장이었다. 영현시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였지만 공무원 수는 인구 60만 규모의 타 지자체보다 적었다. 민원 처리가 늦고, 인허가가 밀리고, 재난 대응이 허술했다.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배정호는 그 불만을 등에 업고 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의회가 막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치행정위원회가 막았다. 위원 일곱 명 중 다수를 차지하는 반대파는 "예산이 부족하다", "인건비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정호는 알고 있었다. 진짜 이유는 예산이 아니었다. 시장실에 출입하는 기자들조차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 의회는 시장에게 빚을 지우고 싶었다.
지방자치법상 조직개편안은 시장이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가 의결해야 시행된다. 의회가 부결하면 시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견제와 균형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영현시에서 그 원리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거래.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정책보좌관 유진수가 들어왔다. 50대 초반, 마른 체형에 은테 안경. 배정호가 시장 출마를 결심했을 때부터 함께한 참모였다. 유진수는 응접 소파에 앉지 않고 배정호의 책상 앞에 섰다. 그것은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시장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앉아서 해."
유진수가 앉았다.
"조직개편안 건인데요."
"또 부결되겠지. 12월 정기회 때 올려봤자."
"그게요. 좀 다른 루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배정호가 유진수를 바라보았다. 유진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의장님이 요즘 서현3지구 건으로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안건 상정을 원하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현3지구? 거기 자연녹지 종상향 건 아냐?"
"네. 조건부 통과까지는 갔는데, 아직 최종 확정이 안 된 세부 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교통영향평가 재검토 건하고, 기부채납 규모 조정 건이요."
배정호의 눈이 좁아졌다.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유진수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입을 열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누구십니까."
"부시장이지."
"부시장은 시장님이 임명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배정호는 유진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유진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진수야."
"네."
"나한테 지금 의장하고 거래하라는 거야?"
유진수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류 뭉치의 첫 장을 가리켰다. 공무원 87명 증원. 68억 원. 9개월째 묶여 있는 숫자들.
"시장님, 영현시 공무원 1인당 담당 민원 수가 전국 평균의 1.4배입니다. 지난달 폭우 때 재난안전과 인력이 부족해서 산사태 현장에 공무원을 제때 못 보냈습니다. 시민 한 분이 다쳤고요. 그 보도가 나갔을 때 시장님 지지율이 8% 떨어졌습니다."
"그건 알아."
"이 조직개편안이 연내에 안 통과되면, 내년 예산에 반영이 안 됩니다. 그러면 최소 2년은 더 밀립니다. 시장님 임기가 얼마 남았습니까."
배정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수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의장 쪽에서 먼저 접촉해온 거야?"
"직접은 아닙니다. 의장 비서실장이 우리 정책실 부실장한테 한번 만나자고 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했는데?"
"'서현3지구 건이 시장님 소관이니 시장님과 직접 의논할 사안이 아니겠느냐'라고요."
배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은행나무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어 노란 잎이 몇 장 떨어졌다.
"의장님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겠어. 서현3지구 최종 확정을 매끄럽게 해달라는 거지. 도시계획심의위에서 걸리는 조건들을 풀어달라는 거고."
"네."
"그 대가로 조직개편안을 풀어준다?"
유진수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말로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만 말했다.
"의장 비서실장이 이번 주 안에 답을 달라고 했습니다."
유진수가 나간 뒤, 배정호는 한참 동안 창 앞에 서 있었다. 은행나무 아래로 시민들이 지나갔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엄마, 서류 봉투를 든 민원인, 담배를 피우며 통화하는 공무원. 그들 중 누구도 5층 시장실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른다. 알 이유도 없다.
배정호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영현당이라."
영현시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러나 누구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단어였다. 여당도 야당도 없이, 지역 이권 앞에서는 하나가 되는 초당적 카르텔. 시장이 의장의 일을 밀어주고, 의장이 시장의 일을 풀어주는 교차승인 시스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영현시 정치의 운영체제라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배정호는 책상으로 돌아와 서류를 다시 펼쳤다. 공무원 87명. 시민 서비스. 재난 대응. 그의 공약. 그의 존재 이유.
서랍을 열고 휴대폰을 꺼냈다.
2
같은 날 저녁, 영현시 송지구 남교산 기슭의 한 한정식집.
1층은 일반 좌석이었고, 2층에 개인 룸 세 개가 있었다. 가장 안쪽 방의 이름은 '송학'. 방 안에는 6인용 좌탁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산수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에어컨이 낮게 돌아가고 있었다.
문상훈 의장이 먼저 와 있었다. 양복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앉아 보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60대 중반, 넓은 이마에 은발이 깔끔하게 빗겨져 있었다. 5선 시의원. 영현시의회 의장. 송지구에서 태어나 송지구에서 자란, 이 도시의 정치 지형을 손바닥처럼 아는 사람이었다.
배정호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문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장님,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날이 추워지는데."
"의장님이야말로. 일정이 빡빡하실 텐데."
형식적인 인사가 오갔다. 음식이 나왔다. 전채 — 도토리묵무침, 더덕구이, 연근조림.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놓고 젓가락을 들었지만 거의 먹지 않았다.
문상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시장님, 조직개편안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네. 솔직히 좀 지쳤습니다."
"이해합니다. 시장님 마음도 알고, 현장 상황도 알아요. 공무원 수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우리 의원들한테도 민원이 들어와요. 동사무소 가면 줄 서서 한 시간씩 기다린다고."
배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상훈의 말에 진심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 인식은 정확했다.
"근데 자치행정위에서 계속 막히니까요."
"그 부분은 제가 좀 송구스럽습니다. 위원들한테 말을 해봐도 예산 타령만 하니."
"예산 문제가 아닌 건 의장님도 아시잖습니까."
문상훈이 미소를 지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배정호도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미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의미하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문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장님, 제가 하나 부탁드릴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서현3지구 건 아시죠?"
"네. 자연녹지 종상향 건."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조건부 통과가 났는데, 아직 확정이 안 된 부분이 있어서요."
배정호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떤 부분인데요."
"교통영향평가 재검토 건이 하나 있고, 기부채납 세부 내역 조정 건이 하나 있습니다. 큰 건 아닌데, 도시계획심의위에서 재상정을 해야 확정이 돼요."
"도시계획심의위 위원장이 부시장인데요."
"그러니까 시장님한테 말씀드리는 거지요."
배정호는 문상훈의 눈을 바라보았다. 문상훈은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 속에서 같은 계산을 읽었다.
"의장님, 서현3지구 토지 소유 관계가 좀 복잡하다고 들었는데요."
문상훈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0.5초 정도.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땅이 그쪽에 좀 있어요. 형제들이랑 나눠 가진 거라 복잡한 건 맞습니다."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 않습니까."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제 자리는 없어요. 의장은 당연직 위원도 아니고. 행정 절차상 하자는 없습니다."
배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적으로는 맞았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시장 소속 자문기구이고, 의장은 법적 구성원이 아니었다. 다만.
"여론이 신경 쓰이긴 하실 텐데."
"그래서 조용히 처리되면 좋겠다는 거지요."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 거래의 윤곽이 드러나는 침묵이었다.
배정호가 말했다.
"의장님이 조직개편안을 풀어주시면, 서현3지구 건은 절차대로 진행되도록 하겠습니다."
"절차대로."
"네. 도시계획심의위에서 재상정하고, 조건들 검토해서, 문제없으면 확정하는 거죠."
"문제가 있으면요?"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 되지요. 그게 절차 아닙니까."
문상훈이 보이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조직개편안은 제가 직권상정 하겠습니다."
"직권상정이요?"
"상임위에서 9개월째 잡고 있으니까, 본회의에 바로 올리는 겁니다. 의장 직권상정이면 상임위 의결 없이도 가능해요."
배정호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직권상정은 의장의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였다. 상임위원회가 안건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의장이 이를 무시하고 본회의에 직접 상정하는 절차.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의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편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만 가능한 일.
"의원들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문상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설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달랐다. 5선 의원. 영현시 정치의 좌표를 설정하는 사람. 그가 "설득하겠다"고 말할 때, 그것은 통보에 가까웠다.
배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은 저녁이었습니다, 의장님."
문상훈도 일어났다. 악수를 했다.
"시장님,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한정식집 2층 계단을 나란히 내려갔다. 1층 로비에서 각자의 차로 갈라졌다. 시장 관용차의 검은 유리창 너머로 남교산의 어두운 능선이 보였다. 그 능선 아래 어딘가에 서현3지구의 땅이 있었다. 죽은 땅이었다가 살아난 땅. 자연녹지였다가 주거지역이 된 땅. 한 가문의 땅.
배정호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도 말을 걸지 않았다.
3
열흘 후, 문상훈은 서현동 자택 서재에 앉아 있었다.
서재는 넓지 않았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참나무 책장이 세 벽을 채우고 있었고, 정면 벽에는 액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왼쪽은 문상훈이 처음 시의원에 당선되었을 때의 사진 — 1998년, 서른일곱 살. 오른쪽은 아버지 문병도의 영정 사진이었다. 무표정한 얼굴, 넓은 이마, 짙은 눈썹. 문상훈은 아버지를 닮았다.
문병도는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송지구 서현동 일대에 논밭과 임야를 소유한 지역 유지였다. 농사를 짓다가 1980년대에 부동산 투자로 전환했고, 서현동 구릉지 일대를 수십 년에 걸쳐 매입했다. 남교신도시가 개발되기 전부터 그 땅을 가지고 있었다. 남교신도시가 옆에 들어서면서 주변 지가가 올랐지만, 정작 문병도의 땅은 자연녹지 — 개발이 극히 제한되는 용도지역 — 로 묶여 있었다. 게다가 맹지였다. 도로에 접하지 않아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는 땅.
문병도는 죽을 때까지 그 땅이 풀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문상훈이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이제 됩니다."
책상 위에는 서류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 서현3지구 관련 서류 — 토지대장 사본, 가등기 내역서, 지분 정리 현황표. 문상훈이 직접 만든 표였다. 가로축에 필지 번호, 세로축에 가족 구성원 이름. 문병도, 문상훈, 문상미, 문상철, 그리고 가등기로 묶여 있는 외부 지분.
전체 부지 면적 약 12,000제곱미터. 문씨 일가 직접 소유 52%. 가등기 포함 시 70%. 나머지 30%는 소액 지분으로 흩어져 있었고, 대부분은 이미 매매 협의가 끝나 있었다.
이 땅이 자연녹지로 묶여 있을 때의 공시지가는 제곱미터당 약 35만 원이었다.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이 확정되고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면, 보상가 또는 실거래가는 제곱미터당 3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었다. 문씨 일가 소유분 약 8,400제곱미터 기준으로, 토지 가치 상승분만 대략 220억 원.
문상훈은 그 숫자를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여동생 문상미가 들어왔다.
"오빠, 엄마가 저녁 먹으래."
"금방 가."
문상미가 책상 위 서류를 흘깃 보았다.
"서현3지구?"
"응."
"어떻게 되고 있어?"
"도시계획심의위에서 조건부 통과 났고, 세부 조건 확정만 남았어."
"언제쯤 확정돼?"
"빠르면 이번 달 안에."
문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철이 오빠도 물어보던데. 지분 정리는 다 된 거야?"
"거의 다. 외부 소액 지분 몇 개만 정리하면 돼. 경기도시주택공사가 시행사로 들어오면서 수용 절차가 간단해졌어."
"경기도시주택공사라... 민간이 아니라 공사가 하는 거면 보상가가 좀 높아지는 거 아니야?"
"공시지가 기준에 감정평가 더하면 그렇지."
문상미가 돌아간 뒤, 문상훈은 다시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기부채납 내역서. 서현3지구 개발에 따른 기부채납 항목.
- 소공원 2,550㎡: 영현시에 무상 귀속
- 경관녹지 403㎡: 영현시에 무상 귀속
- 진입도로 확폭: 6m → 12m, 사업비 약 12억 원
- 기부채납 총액: 약 48.4억 원 상당
48.4억 원. 문상훈은 그 숫자를 무표정하게 읽었다. 203세대 아파트의 예상 분양 총액은 약 1,500억 원이었다. 48.4억은 3.2%에 해당했다. 통상적인 기부채납 비율이 10~15%인 점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이 비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위원은 없었다.
문상훈은 서류를 정리하여 서랍에 넣고 서재 문을 닫았다. 복도를 걸어 거실로 향하면서 영정 사진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았다.
아버지 문병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4
11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두 시, 영현시청 별관 3층 회의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제2024-18차 회의'라는 팻말이 회의실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ㄷ자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위원장석에는 '영현시 부시장 권혁주'라는 명패가 세워져 있었다. 양쪽으로 위원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도시계획 전문가, 건축사, 교통공학 교수, 환경 분야 시민위원.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도시계획 조례 제72조에 따라 이 위원회의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안건은 세 건이었다.
제1호 안건: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 세부 조건 확정의 건
제2호 안건: 송지구 서현동 산47-2 일대 소규모 개발행위 허가 신청의 건
제3호 안건: 영현시 도시공원 재정비계획 변경(안)의 건
부시장 권혁주가 의사봉을 두드렸다.
"제2024-18차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제1호 안건,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 세부 조건 확정의 건입니다. 도시개발과장님, 설명해주시죠."
도시개발과장 한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경을 밀어 올리고, 프로젝터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서현3지구는 지난 3월 본 위원회에서 조건부 통과 결정을 받은 바 있으며, 금일은 부대 조건의 이행 확인 및 세부 사항 확정을 위해 재상정되었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배치도, 교통동선도, 일조 분석도가 차례로 나타났다.
"교통영향평가 재검토 결과, 서현3지구 진출입로의 첨두시 교통량은 시간당 약 320대로 예측되며, 기존 도로의 서비스 수준을 D등급 이하로 저하시키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위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320대라고 했는데, 한양뉴타워 지식센터 출입 차량은 반영이 됐습니까? 그쪽이 이미 교통사고 다발구간인데."
한재민이 답했다.
"기존 교통량에 한양뉴타워 지식센터 출입 차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함되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구간 불법유턴 문제는요? 중앙선 넘어서 유턴하는 차량이 많다는 민원이 수십 건인데."
"불법유턴은 교통 단속의 영역이라 도시계획 심의 범위에는..."
"그러니까 교통영향평가에 반영이 안 됐다는 거 아닙니까?"
부시장 권혁주가 개입했다.
"그 부분은 교통 관련 부서에서 별도로 대응하는 것으로 하고, 본 안건은 도시계획 범위 내에서 심의하겠습니다. 다음 사항으로 넘어가시죠."
질의가 잘렸다. 해당 위원은 입을 다물었다.
한재민이 설명을 이어갔다.
"기부채납 규모는 당초 안과 동일하게 소공원 2,550제곱미터, 경관녹지 403제곱미터, 도로 확폭 공사비 포함 총 48.4억 원 상당입니다."
"그 기부채납 비율이 좀 낮지 않나요? 이 규모 개발이면 통상 10% 이상인데."
한재민이 준비된 답변을 읽었다.
"경기도시주택공사가 시행하는 공공 성격의 사업인 점, 소형 평형 비율이 50%를 초과하는 점 등을 감안하여 기부채납 비율을 조정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질의는 없었다. 부시장이 물었다.
"제1호 안건에 대해 의결하겠습니다. 원안대로 확정하는 것에 찬성하시는 위원님은 거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두 명 중 열 명이 손을 들었다. 반대 한 명, 기권 한 명.
"가결되었습니다."
전체 소요시간 22분. 12,000제곱미터의 자연녹지가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확정되는 데 22분이 걸렸다.
이어서 제2호 안건이 상정되었다. 송지구 서현동 산47-2 일대 소규모 개발행위 허가 신청. 내용은 이랬다. 지역 주민 이모 씨가 소유한 350평(약 1,160제곱미터) 부지에 근린생활시설(소규모 상가)을 짓겠다는 신청이었다.
한재민이 설명했다.
"해당 부지는 자연녹지지역으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56조에 따른 개발행위 허가 기준에 부합하는지 심의를 요청드립니다."
위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연녹지에서 근린생활시설이요? 용적률은?"
"120%입니다."
"배수 계획은?"
"자연 배수로를 활용하되, 우수관 연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연 배수로요? 이 경사도에서? 장마 때 토사 유출 우려가 있는데."
"녹지 훼손 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약 800제곱미터입니다."
"자연녹지 800제곱미터를 훼손하는 건 좀..."
40분간의 심의 끝에 제2호 안건은 부결되었다. 찬성 세 명, 반대 아홉 명.
350평짜리 소규모 개발은 부결. 12,000제곱미터, 22층, 203세대의 대규모 종상향은 22분 만에 확정.
회의록은 비공개였다. 도시계획 조례 제72조. 위원 명단도 비공개. 발언 내용도 비공개. 어떤 위원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어떤 위원이 손을 들었는지, 회의실 밖의 누구도 알 수 없었다.
5
영현시의회 본회의장.
반원형 좌석 배치에 의원석 서른 개가 늘어서 있고, 정면 높은 단상에 의장석이 놓여 있었다. 의장석 뒤 벽면에는 태극기와 영현시 깃발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사이에 금색 글씨로 '영현시의회'라는 현판이 빛나고 있었다.
2024년 11월 넷째 주 화요일, 제287회 영현시의회 정기회 제3차 본회의.
의원 서른 명 중 스물여섯 명이 출석해 있었다. 안건 목록에는 '조직개편 조례안'이 적혀 있지 않았다. 원래 이번 회기 안건은 추경예산안과 조례 일부개정안 세 건이었다.
오후 두 시 삼십분, 문상훈 의장이 의장석에 올랐다. 의사봉을 한 번 두드렸다.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웅성거리던 의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문상훈이 서류를 펼쳤다.
"금일 안건 심의에 앞서, 의장으로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본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의원들이 의장석을 올려다보았다.
"영현시 조직개편 조례안이 자치행정위원회에 계류된 지 9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다섯 차례 심의가 이루어졌으나 의결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조례안은 영현시 공무원 조직의 효율적 운영과 시민 서비스 개선을 위해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몇몇 의원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이미 짐작한 표정이었다.
"이에 의장은 「지방자치법」 제80조 및 「영현시의회 회의규칙」 제22조에 따라, 영현시 조직개편 조례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합니다."
의원석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자치행정위원회 소속 의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의장, 직권상정은 긴급한 사안에 한해 가능한 것 아닙니까? 상임위 심의가 끝나지 않은 안건을..."
문상훈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의원님, 발언은 토론 시간에 하시기 바랍니다. 직권상정의 요건은 의장이 판단하는 것이며, 본 안건은 시민 생활과 직결된 긴급 사안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자치행정위원장의 얼굴이 굳었지만, 발언하지 않았다.
"그러면 영현시 조직개편 조례안에 대한 토론을 실시하겠습니다. 찬성 토론 하실 의원님?"
침묵.
"반대 토론 하실 의원님?"
의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조현택 시의원이었다. 3선. 시민사회 출신. 의회 내에서 '외톨이'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조현택 의원님, 발언하시죠."
조현택이 마이크 앞에 섰다.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동료 의원 여러분. 저는 이 직권상정 자체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또렷했다.
"상임위에서 9개월간 충분한 심의가 이루어졌다면 직권상정이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상임위에서 9개월간 부결된 것은, 그만큼 쟁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쟁점을 해소하지 않고 본회의에 올리는 것은 절차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조현택이 본회의장을 둘러보았다. 동료 의원들의 표정은 무관심하거나 불편했다.
"특히 저는 이 직권상정의 시기가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문상훈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최근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 세부 조건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열흘 후에 이 조직개편안이 직권상정됩니다. 두 사안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 의원님." 문상훈이 마이크를 켰다. "발언은 안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안건은 본 의안과 무관합니다."
"의장님, 저는..."
"발언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조현택이 입을 다물었다. 마이크 앞에 3초간 서 있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의원석 스물여섯 개 중 조현택을 바라보는 의원은 두세 명에 불과했다.
문상훈이 말했다.
"더 이상 토론 신청이 없으므로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하겠습니다."
의사봉을 들었다.
"영현시 조직개편 조례안, 원안대로 의결하는 것에 찬성하시는 의원님은 찬성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찬성, 반대, 기권. 의원들이 버튼을 누르는 시간.
3초.
문상훈이 전광판을 확인했다. 의사봉이 내려왔다.
"재석 26인 중 찬성 19, 반대 5, 기권 2.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사봉 소리가 본회의장에 울렸다. 짧고 건조한 소리.
조현택은 자리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찬성 19. 자치행정위원회에서 다섯 번이나 부결시켰던 의원들 중 상당수가 찬성으로 돌아섰다. 9개월 동안 "예산이 부족하다", "인건비가 과다하다"던 논리는 3초 만에 증발했다.
무엇이 바뀐 것인가. 예산이 갑자기 늘었는가. 인건비 추계가 달라졌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하나 — 의장이 원했다.
조현택은 수첩을 꺼내 두 줄을 적었다.
서현3지구 도시계획심의위 확정: 11월 ○일
조직개편안 직권상정·가결: 11월 ○○일
두 줄 사이에 화살표를 그렸다.
6
같은 시각, 남교서현 대림아파트 4706동 14층.
장수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지역 뉴스 채널. 아나운서가 말했다.
"영현시의회는 오늘 정기회 본회의에서 조직개편 조례안을 의결했습니다. 문상훈 의장이 직권상정한 이 조례안은 공무원 87명 증원을 골자로 하며, 자치행정위원회에서 9개월간 부결되었던 안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입니다."
화면에 본회의장이 나왔다. 문상훈 의장이 의사봉을 내리치는 장면. 전광판의 '찬성 19' 숫자.
장수영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조직개편이 뭔지, 직권상정이 뭔지, 자기 삶과 무슨 상관인지 관심이 없었다. 베란다 창 너머로 공사 현장의 가림막이 보였다. 야간 작업등이 켜져 있어 하얀 가림막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타워크레인의 실루엣이 밤하늘에 검게 솟아 있었다.
남편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며 말했다.
"그 공사 소음 민원 넣었어?"
"넣었는데 시청에서 '야간공사 허가 받은 거라 어쩔 수 없다'래."
"허가를 누가 내준 거야."
"시청이지. 도시개발과."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장수영도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TV에서는 이미 다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날씨 예보. 내일 영하 2도, 첫 한파 예보.
장수영은 조직개편안이 서현3지구와 무슨 관계인지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시장실의 대화도, 한정식집 2층의 악수도, 도시계획심의위원회의 비공개 회의도, 본회의장의 3초도 —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장수영은 몰랐다.
그 선의 한쪽 끝에는 문상훈 의장의 12,000제곱미터 토지가 있었고, 다른 쪽 끝에는 배정호 시장의 공무원 87명이 있었다. 두 개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거래가 성립했다. 거래의 대가는 장수영의 햇빛이었고, 4706동 주민들의 조망이었고, 한양뉴타워 앞 교통사고 다발구간을 지나는 시민들의 안전이었다.
그러나 TV 화면에는 '공무원 증원으로 시민 서비스 향상 기대'라는 자막만 흘러가고 있었다.
7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밤, 영현시민연대 사무실.
김도형은 책상 위에 종이 네 장을 나란히 펼쳐놓았다. 형광등 아래에서 종이의 흰색이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박은지가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첫 번째 종이: 서현3지구 도시계획 변경 경위
- 2023. 8.: 완충녹지 해제 신청
- 2023. 11.: 완충녹지 해제 승인 → 맹지 해소
- 2023. 12.: 지구단위계획 변경안 주민공람 공고 (14일간, 시청 홈페이지)
- 2024. 3.: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조건부 통과
- 2024. 5.: 영현시 고시 제2024-187호 (용도지역 변경 결정)
- 2024. 6.: 착공
- 2024. 11. ○일: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세부 조건 확정
두 번째 종이: 영현시 조직개편안 경과
- 2024. 2.~9.: 자치행정위원회 5차례 부결
- 2024. 11. ○○일: 문상훈 의장 직권상정 → 본회의 3초 만에 가결
세 번째 종이: 토지 소유 현황
- 문병도(작고) / 문상훈 / 문상미 / 문상철 일가: 전체 부지의 52% (가등기 포함 70%)
- 문상훈: 영현시의회 의장 (5선)
네 번째 종이: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 비교
- 서현3지구 (12,000㎡, 22층, 203세대): 조건부 통과 + 확정. 소요시간 22분.
- 서현동 산47-2 (1,160㎡, 근린생활시설): 부결. 소요시간 40분.
김도형이 볼펜을 들었다. 첫 번째 종이의 마지막 줄과 두 번째 종이의 마지막 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두 동그라미 사이에 선을 그었다.
박은지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대표님,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서현3지구 확정이 11월 초, 직권상정이 11월 말. 열흘 간격이에요."
"열흘."
"9개월 동안 꿈쩍도 안 하던 조직개편안이 갑자기 풀린 거예요. 자치행정위 부결 사유가 해소된 것도 아닌데. 예산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바뀐 건 딱 하나, 의장이 직권상정을 한 것뿐이에요."
김도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 씨, '영현당'이라는 말 들어봤어?"
박은지가 잠시 생각했다.
"여야가 지역 이권 앞에서 뭉친다는 그거요?"
"응. 영현시 정치인들 사이에서 쓰는 말이야. 당적이 다르면 서울에서는 싸우지만, 영현시에서는 한 편이라는 거지. 시장이 의장의 일을 밀어주고, 의장이 시장의 일을 풀어주고. 이번 건도 그 패턴이야."
"교차승인."
"맞아. 시장은 도시계획심의위를 통해 서현3지구를 밀어줬고, 의장은 직권상정으로 조직개편안을 풀어줬어. 완벽한 맞교환이지."
박은지가 네 장의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대표님, 이걸 어떻게 증명하죠? 밀실에서 이루어진 거래잖아요. 도시계획심의위 회의록은 비공개이고, 시장과 의장이 만났다는 기록이 있을 리도 없고."
"증명은 어렵지.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까."
김도형이 볼펜을 탁탁 두드렸다. 그의 버릇이었다.
"하지만 정황은 명확해. 타임라인이 말해주고 있어. 그리고 한 가지 더."
김도형이 서랍에서 USB를 하나 꺼냈다. 라벨에 '내부 제보 — 2024. 11.'이라고 적혀 있었다.
"며칠 전에 시의회 관계자한테서 받은 거야. 녹취는 아니고, 내부에서 나온 진술서야."
박은지가 눈을 크게 떴다.
"진술서요?"
"의회 사무처 직원이야. 이름은 못 밝히고. 진술 내용의 핵심은 이거야."
김도형이 수첩을 펼쳤다. 진술서의 핵심 문장을 옮겨 적어 둔 것이었다.
"의장님이 직접 하시겠다 해서 본회의에 바로 올려서, 3초 만에 끊어주셨습니다."
"3초."
"응. 찬성 버튼 누르는 데 3초. 토론은 조현택 의원 혼자 했고, 그마저도 중간에 잘렸어."
"그게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으니까 조직개편안이 올라간 거예요. 이상이 맞아요."
"'이상이 맞다'라는 건..."
"타이밍이 이상하다는 거지. 내부에서도 알고 있다는 뜻이야."
"왜냐면 우리가 이 공무원의 수를 처벌해서 — 아, 그러니까 증원을 거부해서 몇 달을 시 없이 내는 지자체인데, 예산은 늘리지 못하면서 — 그걸 갑자기 풀었으니까요."
박은지가 수첩의 문장들을 천천히 읽었다.
"이건 내부 고발이네요."
"고발까지는 아니야. 이 사람은 자기 이름이 나가는 건 원하지 않아. 다만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야."
김도형이 수첩을 덮었다.
"은지 씨, 정리하자.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세 가지야."
"네."
"첫째, 서현3지구 토지의 70%가 문상훈 의장 일가 소유라는 팩트. 이건 토지대장으로 확인 가능해."
"네."
"둘째, 서현3지구 도시계획심의위 확정과 조직개편안 직권상정의 시간적 근접성. 열흘 간격."
"네."
"셋째, 내부 진술. '3초 만에 끊어줬다'. '타이밍이 이상하다'."
"네."
김도형이 네 장의 종이를 한데 모아 클리어파일에 넣었다.
"단정 짓기엔 이르지만, 이건 추적할 가치가 있어."
박은지가 물었다.
"어떻게요?"
"행정심판을 넣을 수 있어. 도시계획심의위 회의록 비공개 처분에 대해서. 비공개 사유가 부당하다는 거지. 이미 결정이 확정된 사안인데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하는 건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어."
"시간이 걸리겠네요."
"걸리지. 하지만 회의록을 확보하면 많은 것이 보일 거야. 누가 찬성했는지, 어떤 질의가 오갔는지, 이해충돌 방지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김도형은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밤 열한 시. 창밖으로 송지구의 아파트 불빛이 빽빽했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한 가족의 삶이었다. 장수영의 거실 불빛도 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박은지가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대표님, 이거 기사화할 수 있을까요?"
"아직 안 돼. 확인 안 된 걸로 기사 내면 우리가 당해. 팩트가 더 필요해."
"어떤 팩트요?"
김도형이 클리어파일을 가방에 넣으며 답했다.
"거래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어. 하지만 거래의 결과는 증명할 수 있지. 서현3지구 종상향으로 문상훈 의장 일가가 얼마를 벌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적 절차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감정평가서."
"맞아. 종상향 전후의 토지 감정가를 비교하면 돼. 그리고 기부채납 비율 3.2%가 정당한 것인지. 통상 10~15%인데 왜 3.2%인지. 도시계획심의위에서 350평짜리 소규모 개발은 부결시키면서 12,000제곱미터는 통과시킨 이유가 뭔지."
사무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김도형이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박은지에게 말했다.
"은지 씨, 이 사건의 핵심은 부패가 아니야."
"부패가 아니라면요?"
"시스템이야. 한 사람이 나빠서 생긴 일이 아니라, 시스템이 이걸 가능하게 만든 거지. 도시계획심의위가 비공개인 것, 직권상정에 견제가 없는 것, 이해충돌 방지가 사후적인 것, 주민의견 수렴이 형식적인 것. 그 모든 구멍이 합쳐져서 이 거래가 가능해진 거야."
박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거네요."
"정확해. 시장은 의회를 견제해야 하고, 의회는 시장을 견제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견제할 사람이 없어져. 조현택 의원 같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해도 3초 만에 묻혀버리는 거지."
두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11월 밤바람이 차가웠다. 장수영의 아파트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 타워크레인의 빨간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밤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김도형이 가방 속 클리어파일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네 장의 종이. 타임라인, 토지 소유, 심의 비교, 그리고 두 개의 동그라미 사이의 선.
"이건 우연이 아니야."
김도형은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제4회에 계속
[편집자 주] 용어 해설
1. 직권상정(職權上程)
의회 의장이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안건을 직접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 「지방자치법」 제80조에 따라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 의장의 판단으로 가능하다. 상임위원회의 심사 기능을 우회하는 강력한 권한으로, 남용 시 의회 내 견제와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2. 교차승인(交叉承認)
행정부와 입법부(의회)가 상호 간의 안건을 암묵적으로 밀어주는 관행. 시장이 의장 측에 유리한 행정 결정을 내려주고, 의장이 시장 측에 필요한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법적으로 규정된 용어는 아니며, 지방자치 현장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이권 교환 패턴을 지칭하는 비공식 표현이다.
3. 비공개 회의(非公開 會議)
도시계획심의위원회 등 자문·심의 기구의 회의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것. 위원 명단, 발언 내용, 표결 결과 등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심의의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서도 '의사결정 과정'을 사유로 비공개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4. Quid Pro Quo (대가성 교환)
라틴어로 '이것을 주면 저것을 준다'는 뜻. 법률·정치 영역에서는 공적 권한의 행사가 사적 이익과 연결되는 대가성 거래를 지칭한다. 직접적인 금전 수수가 아니더라도, 공적 의사결정을 교환하는 행위 자체가 권한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5. 이해충돌 방지(利害衝突 防止)
공직자가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2022년 시행)은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업무에서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적 영향력 행사나 제3자를 통한 우회에 대한 규율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