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나는 이상했다.


해맑은 법인의 비리를 조사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이 이야기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가.


사회복지법인의 수백억 원대 자산 횡령 의혹. 관선 이사가 법인의 주인이 된 전대미문의 사건. 기부받은 17만 평 토지의 헐값 임대. 시세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 사라진 임대료.


어느 하나만 터져도 지역 뉴스의 톱을 장식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평강시의 지역 언론을 전부 뒤졌다. 평강일보, 중부일보, 평강투데이, 시민의소리. 어느 매체에서도 해맑은 법인에 대한 비판 기사가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맑은 법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20년 동안.


시신 사건이 있었던 2004년에도, 관선 이사가 정이사로 바뀐 2013년에도, 태양광 임대 계약이 체결된 2015년에도. 단 한 줄의 기사도 없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법인처럼.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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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 기자이자 이사인 남자 】



박영준.


평강일보의 창립자이자 대표. 중부도 언론인협회 부회장. 전국기자협동조합 이사. 화려한 이력의 언론인.


그리고, 사회복지법인 해맑은의 이사.


나는 처음에 이 사실을 믿지 못했다. 지역 언론사의 대표가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인의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그것은 언론 윤리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해맑은 법인의 등기부등본에 박영준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2004년 관선 이사로 시작해서, 2013년 정이사로 전환. 20년째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박영준의 행적을 추적했다.


평강일보는 1998년에 창간된 주 2회 발행 지역 신문이었다. 창간 당시에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평강시청, 시의회, 지역 기관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를 종종 실었다. 초창기에는 제법 강골 언론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2004년 이후, 성격이 달라졌다.


비판 기사가 줄었다. 대신 홍보성 기사가 늘었다. 평강시의 정책을 칭찬하는 기사, 지역 기업인을 띄워 주는 기사, 각종 행사를 보도하는 기사. 언론이라기보다는 홍보지에 가까워졌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2004년.


관선 이사로 임명된 해. 법인과의 관계가 시작된 해.


나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박영준이 해맑은 법인의 이사가 된 이후, 그의 신문은 법인에 대해 침묵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영향력 안에 있는 다른 언론들도 침묵하게 되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지역 언론 생태계의 구조를 파헤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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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 1조 원의 먹이사슬 】



대한민국 정부와 공공기관이 집행하는 광고·홍보 예산은 연간 약 1조 원이다.


이 1조 원은 중앙 부처, 광역 지자체, 기초 지자체, 공기업, 공공기관으로 나뉘어 집행된다. 그리고 그 광고의 상당 부분이 지역 언론에 배분된다. 지역 신문, 지역 방송, 인터넷 매체. 정부 광고는 지역 언론의 생명줄이었다.


평강시만 해도 연간 광고·홍보 예산이 수십억 원에 달했다. 이 돈이 어느 매체에 얼마나 배분되는가는, 공식적으로는 광고 효과와 매체 영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달랐다.


나는 전직 지역 언론 기자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익명을 조건으로 내막을 털어놓았다.


"광고 배분은 사실상 담합이에요. 지역 언론인협회라는 조직이 있어요. 거기서 '누가 얼마나 받을지'를 조율해요. 협회 간부진과 친한 매체는 많이 받고, 아닌 매체는 적게 받아요."


"협회가 그런 권한이 있나요?"


"공식적으로는 없죠. 그런데 시청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어느 매체에 광고를 줄지 고민할 때, 언론인협회 부회장이 전화해서 '이쪽에 좀 실어 주세요' 하면 거절하기 어렵죠. 나중에 비판 기사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 언론인협회 부회장이 누구죠?"


"박영준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준은 광고 배분의 키를 쥐고 있었다. 그 키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언론사들도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가 "이 기사는 안 됩니다"라고 하면, 다른 언론사들도 조심하게 된다.


해맑은 법인에 대한 침묵은 박영준 개인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고라는 당근과 비판 기사라는 채찍으로 유지되는, 구조적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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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3 : 사라진 기사들 】



침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침묵시킨 흔적도 있었다.


나는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지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2016년 3월, 중부일보 웹사이트에 한 기사가 올라왔다가 삭제된 흔적이 있었다. 제목만 캐시에 남아 있었다.


'평강 복지법인, 청산시 토지 헐값 임대 의혹'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짐작되었다. 누군가가 해맑은 법인의 토지 임대 건을 기사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는 게시된 지 몇 시간 만에 삭제되었다.


나는 중부일보의 전·현직 기자들을 수소문했다. 어렵게 당시 담당 기자를 찾았다. 그는 만남을 꺼렸지만, 전화 통화에는 응했다.


"그 기사 기억하세요?"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기억해요."


"왜 삭제됐습니까?"


"위에서 내리라고 했어요."


"이유가 뭐였어요?"


"확인이 부족하다고. 법적 리스크가 있다고. 근데 솔직히 말하면, 기사 올라간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박영준 대표한테 전화가 왔대요. 우리 사장한테. 그 다음에 기사 내렸어요."


"두 시간 만에요?"


"네. 누군가 보고 바로 전화한 거죠. 박 대표가 직접 항의 전화를 하면, 우리 사장도 버티기 힘들어요. 광고도 그렇고, 협회에서 왕따 당하면 지역 언론 하기 힘들거든요."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헌법에 명시된 가치들. 그러나 지역에서 그것은 허울에 가까웠다. 광고비라는 돈줄을 쥔 자가 기사를 통제하고, 기사를 통제하는 자가 진실을 묻어 버렸다.


해맑은 법인의 비리가 20년간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굶어 죽는 구조.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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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4 : 기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 】



박영준의 영향력은 평강시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전국기자협동조합의 이사였다. 이 조직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정상적인 기자 단체라고 생각했다. 기자들이 모여 상호 부조하고, 언론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


그러나 조사해 보니 실상은 달랐다.


전국기자협동조합은 2010년에 설립된 단체로, 전국의 지역 언론인들이 가입해 있었다. 표면적인 목적은 '기자 복지 향상'과 '지역 언론 발전'이었다. 그러나 실제 활동은 다른 데 있었다.


협동조합은 정부 광고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집행하는 정부 광고 배분 과정에서, 협동조합 측 인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자기들이 심사위원을 맡아서, 자기들에게 광고를 배분하는 구조.


또한 협동조합은 지역 언론인들의 '질서'를 관리했다. 누가 어느 지역에서 취재하고, 어느 기사를 쓰고, 어느 매체와 협력하는지. 암묵적인 규율이 있었다. 그 규율을 어기면, 협동조합에서 제명되고, 광고 배분에서 배제되고, 지역 언론 생태계에서 퇴출되었다.


박영준은 이 구조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이사로 있는 동안, 해맑은 법인에 대한 기사는 전국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중앙 언론에서 간간이 '지역 복지법인 비리'를 다루는 기사가 나와도, 해맑은 법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 전국의 언론이 고개를 돌렸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언론이 권력이었다.


아니, 언론과 권력이 같은 편이었다.


조현택의 법률, 박영준의 언론, 한정호의 학계. 세 축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


나는 이것을 '카르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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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프행어 】



2024년 가을, 나는 결심했다.


카르텔이 지역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면, 지역 언론을 통해서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없다. 평강일보도 안 되고, 중부일보도 안 되고, 어느 지역 매체도 안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직접 쓰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제목은 '평강시민 강민호의 기록'.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광고도 받지 않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1인 미디어.


첫 번째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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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복지법인 해맑은,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1)


안녕하세요. 평강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 강민호입니다.

저는 지난 1년간 평강시 소재 사회복지법인

'해맑은'에 대해 조사해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발견한 것들을

시민 여러분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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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리는 순간, 손이 떨렸다.


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기자가 아니었고, 변호사가 아니었고, 교수가 아니었다. 조현택처럼 법을 아는 것도 아니고, 박영준처럼 언론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한정호처럼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말할 용기.


나는 '게시' 버튼을 눌렀다.


20년간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날 밤, 블로그 방문자 수는 17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댓글을 남겼다.


"응원합니다. 끝까지 가세요."


나는 그 댓글을 한참 바라보았다. 17명. 고작 17명. 그러나 17명에서 시작하면 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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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회 끝 ─


                 다음 회 : 「심장을 바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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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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