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영남도 청산시.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세 시간, 다시 시내버스로 사십 분을 달리면, 산과 산 사이로 넓은 들판이 열린다. 논과 밭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 인구 10만의 조용한 도시.


그 도시의 북쪽 끝, 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면 풍경이 달라진다.


햇빛.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호수인 줄 알았다. 산기슭을 따라 넓게 펼쳐진 푸른빛의 수면.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태양광 패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평지 위에, 수천 장의 태양광 패널이 정렬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비늘처럼, 산 하나를 통째로 덮고 있었다.


그 면적, 17만 평.


이 땅이 사회복지법인 해맑은의 소유라는 사실을, 이 근방의 주민들은 대부분 알지 못했다. 경기도 평강시에 있는 복지법인이 영남도 청산시에 이만한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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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 기부자의 뜻 】



17만 평의 토지가 해맑은 법인에 들어온 것은 1987년이었다.


기부자는 청산시의 독지가 고(故) 윤상덕 옹이었다. 윤 옹은 청산시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은 집안의 후손으로, 일제 강점기에 빼앗겼던 토지를 광복 후 되찾아 평생 일군 사람이었다. 자녀가 없었던 그는 만년에 사회 환원을 결심했다.


1987년 3월, 윤 옹은 자신이 소유한 청산시 북면 일대의 임야 및 전답 56만 2천 제곱미터를 사회복지법인 해맑은에 기부했다. 당시 해맑은 법인은 설립된 지 3년 된 소규모 복지시설이었지만, 윤 옹은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곳에 쓰이기를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기부증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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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토지는 사회복지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법인의 사업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 외에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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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기부자의 유언이었다. 사회복지. 어려운 이들을 위한 것.


37년이 지난 2024년, 그 땅 위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사회복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 에너지 사업이.


윤 옹이 살아 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그러나 윤 옹은 199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뜻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유언은 기부증서 한 장 속에 잠들어 있었고, 그 증서를 꺼내 읽는 사람도 없었다.


37년간,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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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 30년의 계약 】



2015년 6월, 해맑은 법인은 ㈜한빛에너지와 토지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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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임대차 계약서 (요약) >


임대인: 사회복지법인 해맑은 (이사장 조현택)

임차인: ㈜한빛에너지 (대표이사 윤모)


임대 목적: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및 운영

임대 면적: 약 17만 평 (562,000㎡)

임대 기간: 30년 (2015.06 ~ 2045.06)

임대료: 연 3,500만 원

특약: 임대 기간 중 임대료 인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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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약서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숫자에서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17만 평을 연 3,500만 원에. 30년간 인상 없이.


나중에 강민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임대료는 평당 연 206원에 해당했다. 평당 월 17원. 청산시 인근의 농지 임대료 시세가 평당 연 1,500~2,000원이었으니, 시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적정 임대료로 환산하면 연 2억 5천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할 땅을, 연 3,500만 원에 내준 것이다.


30년간의 차이.


적정 임대료 기준: 75억 원.

실제 계약 임대료: 10억 5천만 원.

차액: 약 64억 5천만 원.


누가 이 차액의 이익을 보는가.


㈜한빛에너지. 이 회사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한 가지만 미리 밝혀 둔다. 이 회사의 설립에 관여한 법률 사무소는, 조현택의 사무소였다.


그리고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은 이사장 조현택이었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 자기가 지배하는 법인의 땅을 헐값에 빌려주는 구조. 이것을 '자기 거래'라 한다. 민법에서는 이해충돌이 있는 자기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사회의 승인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허용되지만, 그 승인을 한 이사회가 조현택의 거수기라면?


승인은 형식이었다. 실질은 조현택이 자기 자신에게 허가를 내준 것이었다.


한 가지 더 있었다.


태양광 발전 사업은 인허가가 필요하다. 영남도청 에너지정책과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한빛에너지의 인허가가 유난히 빠르게 처리되었다는 정황이 있었다.


후일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조현택은 이 인허가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평강시청에서 영남도청으로 간 한 통의 전화.


"영남도 쪽 담당자한테 말해 둘게. 서류는 알아서 처리될 거야."


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후에 알게 되었다. 퇴직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복지대통령 윤재호. 그는 퇴직 후 ㈜한빛에너지의 '경영 자문'을 맡고 있었다. 자문료는 연 2,400만 원. 그것이 전화 한 통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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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3 : 진입로의 거짓말 】



이 계약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조현택은 원하지 않았다.


관할 관청인 평강시와 영남도에는 보고를 해야 했다. 법인 보유 부동산의 사용 용도를 변경하거나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 관할 관청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해맑은 법인은 평강시와 영남도에 동시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계약서의 내용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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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 토지 사용 현황 보고 >


법인 소유 토지 중 일부(진입로 부분)를

인근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게 통행로 목적으로

임대하고 있음을 보고합니다.


임대 면적: 약 1,200평 (진입로 해당 면적)

임대료: 연 35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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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 평이 1,200평으로 줄었다.


연 3,500만 원이 연 350만 원으로 줄었다.


정확히 10분의 1로 축소 보고한 것이다. 진입로만 빌려주었다고. 전체 면적의 0.7%만 임대했다고. 나머지 99.3%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평강시 사회복지과는 이 보고서를 접수했다.


"진입로 정도면 문제 없겠네."


담당자는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았다. 평강시에서 청산시까지는 차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진입로 임대 확인을 위해 왕복 7시간을 쓸 공무원은 없었다.


영남도도 마찬가지였다. 보고서를 접수하고 파일에 넣었다. 끝.


현장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서류에는 1,200평의 진입로가 적혀 있지만, 현실에서는 17만 평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서류와 현실 사이에는 16만 8,800평의 거짓말이 존재했다.


그 거짓말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9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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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4 : 강민호, 그 땅에 서다 】



2024년 여름, 강민호가 청산시에 도착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이십 분을 걸었다.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오르막길이 나온다. 포장이 끝나는 지점부터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인다.


강민호는 멈춰 섰다.


산이 없었다. 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깎여 나간 비탈면 위로 태양광 패널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능선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패널은 마치 군대의 대형처럼 정연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파노라마로. 한 장에 다 담기지 않았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카메라를 돌리는 데 십여 초가 걸렸다.


"이게 전부 법인 땅이라고?"


혼잣말이 나왔다.


그는 근처 마을로 내려가 주민들에게 물었다.


"저 태양광, 언제 들어온 겁니까?"


"한 8~9년 됐을 거여. 처음에 진입로 공사한다고 트럭이 들어오더니, 나중에 보니까 산 전체를 깎아 버렸어."


"혹시 복지법인 땅이라는 거 아세요?"


"복지법인? 몰라. 서울 쪽 회사가 한다고 들었는디."


강민호는 더 자세히 물었다.


"그 땅, 원래 누구 거였는지 아세요?"


주민의 표정이 바뀌었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 듯했다.


"아, 그 땅... 윤 영감 땅이었지. 윤상덕 영감. 우리 동네서 제일 부자였어. 농사로 일군 분인디, 자식이 없어서 다 기부했다고 했어. 불쌍한 사람들 도우라고."


"그 분 아시는 분이세요?"


"알지. 내 아버지 친구였어. 얼마나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는디..."


주민은 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근디 저게 그 땅이라면... 불쌍한 사람 돕는 것하고는 상관없는 거 아녀? 전기 파는 거잖어."


"그렇죠."


"윤 영감이 살아 있으면 속상해 하셨을 거여. 자기 땅이 저렇게 됐다는 거."


주민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그런 거지 뭐. 죽은 사람 뜻은 아무도 안 지키는 거여."


서울 쪽 회사. ㈜한빛에너지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다.


강민호는 다시 산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수천 장의 패널에 반사되어 눈이 아팠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수도 있다. 친환경 에너지의 상징.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것이 보였다.


기부자 윤상덕 옹이 평생을 일군 땅.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바친 땅. 그 위에 사회복지와는 무관한 민간 기업의 발전 시설이 올라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임대료는, 시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강민호는 수첩에 적었다.


'17만 평. 진입로 1,200평으로 축소 보고. 현장 확인한 공무원 0명. 9년간.'


그는 돌아서서 길을 내려왔다. 증거는 확보했다. 사진, 주민 증언, 현장 좌표.


그러나 머릿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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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프행어 】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강민호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연 임대료 3,500만 원. 2015년부터 2024년까지 9년. 총 3억 1,500만 원이 ㈜한빛에너지에서 해맑은 법인으로 들어왔어야 한다.


그런데 법인 회계 장부에는 임대 수입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강민호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법인의 세입·세출 결산서를 입수한 바 있었다. 그 결산서의 '사업 외 수입' 항목에 토지 임대 수입은 없었다. '기타 수입'에도 없었다. 어느 항목에도 없었다.


연 3,500만 원 × 9년 = 3억 1,500만 원.


이 돈은 어디로 갔는가.


세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 ㈜한빛에너지가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

둘째, 임대료를 받았으나 법인 회계에 넣지 않았다.

셋째, 임대료가 다른 경로로 흘러갔다.


어느 쪽이든, 정상이 아니었다.


강민호는 ㈜한빛에너지의 법인 등기부를 열람했다. 설립일, 대표이사, 소재지, 자본금. 그리고 설립 당시 법률 대리인.


법률 대리인: 조현택 법률사무소.


다시, 조현택.


모든 길은 한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민호는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산 위의 태양광 패널들이 마지막 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햇빛으로 전기를 만드는 사업.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업.


그 햇빛 아래에서,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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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회 끝 ─


                 다음 회 : 「언론이라는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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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