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0년, 그리고 72억의 그림자


2026년 2월 10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법정에서 선고된 형량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경기도의회 현직 의원 박세원 징역 10년, 전직 의원 이기환 징역 8년, 정승현 징역 3년. 지능형교통체계(ITS) 사업을 매개로 수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대가였다. 재판부는 "선출된 도의원으로서 직무를 엄정히 수행해야 함에도 청탁을 받아 향응을 수수했다"며 "법령상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한 사실에 비추어 감형할 사유가 없다"고 일갈했다.


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은 한국 지방자치의 구조적 부패가 얼마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ITS 사업자 김 모 씨는 도의원들에게 2억 8천만 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하며 특별조정교부금의 우선 배정을 청탁했다. 의원들은 4명의 자금세탁책과 차명 계좌를 동원해 범행을 은폐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예산 편성 권한을 사적 축재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72억 원 규모의 동일한 ITS 사업이 진행 중인 용인특례시의 110만 시민에게는 한 가지 절박한 질문이 남았다. "우리 지역구의 도의원은 깨끗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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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회 도민참여 진정민원 게시판에 접수된 김선희 의원 징계 요구안. 시민단체 '용인블루'가 2025년 10월 26일 제출했으나, 의회 총무과는 '반복민원'을 이유로 11일 만에 불수리 처리했다. (화면 캡처=경기도의회 홈페이지)

 

 

 12개의 질문,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침묵


시민단체 '용인블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용인시 지역구 경기도의원 10명 전원에게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금품 및 향응 수수 여부,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제공 여부, 구속된 동료 의원과의 인적 네트워크 연루 여부 등 12개의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기한 내 답변하지 않을 경우 의혹에 대해 해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단서도 명확히 달았다.


10명 중 9명은 답변했다. 내용의 충실함이나 진정성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주권자의 물음 앞에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용인시 제7선거구(수지구 풍덕천1동, 풍덕천2동, 죽전2동)의 김선희 도의원(국민의힘)만은 달랐다. 1차 질의에 침묵. 2차 질의에서 "귀하의 침묵이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있다"며 '전혀 없다' 또는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 중 하나만이라도 답할 것을 촉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또다시 침묵이었다.


동료 의원이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서는 엄중한 시기에, 동일한 사업과 관련해 시민들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두 가지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비리에 연루되어 사실관계를 밝히면 법적 책임이 따르기에 답변을 피하는 것이거나,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일 뿐 평소에는 시민의 정당한 물음을 하찮게 여겨도 된다고 판단하는 오만함의 발로이다. 어느 쪽이든 대의기관의 윤리적 파탄이다.




 징계 요구, 그리고 '제 식구 감싸기'의 관료주의


시민사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5년 10월 26일, 용인블루 대표 박용환 명의로 경기도의회에 공식 징계 요구안이 제출되었다. 경기도의회 의원 윤리강령 제3조 제2항 제1호(성실의무)와 제6조 제2항(품위유지의무)을 근거로, 김선희 의원의 고의적 무응답이 의원직의 본질적 책무를 방기한 행위임을 조목조목 적시했다. 

 

마땅히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되어야 할 이 징계 요구안에 대해, 경기도의회 총무과 민원소통팀이 내놓은 답변은 기가 막혔다. 2025년 11월 6일, 불과 11일 만에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제23조(반복 및 중복민원의 처리)에 따라 불수리 처리한다"는 한 줄짜리 통보가 돌아온 것이다.


이 법 조항의 입법 취지는 명백하다. 공공기관의 행정력을 고의로 마비시키는 악성 민원이나 이미 행정적 처분이 완료된 사안에 대한 억지성 반복 민원을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정적 방어권이다. 그런데 경기도의회는 이것을 선출직 공직자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주권자의 절절한 외침에 적용했다. 의원이 끝까지 답변을 거부하여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부작위' 상태에서, 시민단체가 반복적으로 해명을 촉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공적 감시 행위다. 이것을 민원법의 탈을 씌워 종결 처리한 것은 자의적 법 해석이자, 의원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비판을 의회 사무처가 관료주의적으로 막아준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다.


더 참담한 사실이 있다. 같은 시기 경기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는 다른 동료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 11건마저도 기한 내에 처리하지 않고 방기했다. 위원들이 회의에 의도적으로 불참하는 수법으로 의사일정 자체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에 분노한 시민단체 대표들이 윤리특위 위원 12명 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의회 자정 기능의 최후 보루인 윤리특위가 동료 의원들의 '방탄 조끼'로 전락한 것이다.




 징계 요구 12일 후, '우수의원상'이라는 블랙 코미디


시민사회의 징계 요구가 불수리된 지 정확히 12일 후인 2025년 11월 18일, 김선희 도의원은 경기도의회로부터 '2025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을 수상했다. 교육기획위원회 소속으로서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공정성과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장애인 통합교육을 위해 "인식 개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한쪽 얼굴은 72억 원 ITS 사업 비리 의혹에 대한 시민의 12개 질문에 귀를 막고 입을 닫은 무책임한 정치인이다. 다른 한쪽 얼굴은 피감기관인 교육청 관료들을 상대로 '공정성'과 '법과 원칙'을 설파하며 약자의 권익을 운운하는 정의로운 감사관이다. 자신을 향한 주권자의 감시에는 철저히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집행부를 향해서는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이 이중잣대. 이것이야말로 선출직 공직자가 보여줄 수 있는 도덕적 불감증의 극치다.


110만 시민의 알 권리를 짓밟고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징계 요구안이 접수된 의원에게 '우수의원상'이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의회. 이 상패는 도의회가 수여하는 우수의원상이 도민의 체감적 눈높이와는 전혀 무관하게 의원들끼리 품앗이하듯 주고받는 스펙 쌓기용 트로피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자백하는 물증이다.




 그리고 4월의 현수막, "의리있는 도의원"


2026년 4월,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 용인시 성복동의 한 상가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 두 장이 내걸렸다.


"복합문화센터 반드시 건립! 도의원 국민의힘 2 (현)경기도 의원 김선희"


그리고 그 아래,


"의리있는 도의원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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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용인시 성복동 상가 건물 외벽에 내걸린 김선희 도의원의 대형 현수막. "복합문화센터 반드시 건립!"과 "의리있는 도의원 김선희"라는 슬로건이 붉은 바탕 위에 선명하다. 시민의 12개 질문에 침묵한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구애를 보내는 장면이다. (사진=경인블루저널)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강렬하게 박힌 이 슬로건 앞에서, 기자는 씁쓸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의리'라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 보자. 한국 사회에서 의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땅한 도리,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끈끈한 연대를 뜻한다. 정치인에게 의리란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해 준 주권자에 대한 무한한 충성과 책임감이어야 한다. 그런데 도내 전역을 휩쓴 ITS 비리 스캔들 속에서 시민사회가 공적 해명을 요구했을 때, 그는 등을 돌렸다. 동료 의원이 구속되는 엄중한 시기에 시민이 던진 12개의 질문에 단 한 마디의 해명도 남기지 않은 정치인이, 대체 누구와 '의리'를 지켰다는 말인가.


만약 그의 침묵이 진정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주권자를 향한 의리가 아니라 비리 의혹에 침묵하는 정치권 내부의 카르텔적 의리이거나,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지는 비겁한 보신주의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복합문화센터 반드시 건립"이라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복합문화센터 건립은 부지 선정부터 설계, 시공업체 선정, 막대한 도비와 시비의 투입이 수반되는 대규모 관급 사업이다. 수십억 원이 투입되는 ITS 사업의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 해명할 능력조차 없거나 의지조차 보이지 않은 정치인이, 수백억 원이 소요될 복합문화센터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누가 믿겠는가. 과거 2015년 용인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 시절 "수익사업 위주보다 공공사업 확대방안 검토"를 주문하며 현장을 누비던 그 기개는, ITS 사태의 묵살을 거쳐 오로지 "반드시 건립"만을 외치는 현재의 현수막과는 건널 수 없는 도덕적 단층을 이루고 있다.




 용인, 불신의 토양 위에 선 72억


용인 시민사회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 용인시는 과거 수십 년간 관급공사와 수의계약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특혜 논란에 시달려 왔다. 이장, 통장, 관변단체장 등이 수의계약 대상 사업을 부당하게 따내거나, 동일한 주소의 특정 업체 2곳에 수년간 수의계약이 몰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650억 원이 투입된 기흥레스피아, 845억 원이 투입된 구갈레스피아 등 대규모 공공시설의 운영관리 계약에서도 부당 특혜 의혹이 시의회에서 강도 높게 제기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통합 하수처리 관리대행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외부 평가위원 구성을 둘러싼 압력 행사 의혹이 불거지며 시 당국이 형사고발까지 운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불신의 토양 위에서 인근 지자체의 ITS 스캔들은 도화선이 되었다. 수사기관 관계자가 "수사 과정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의혹들에 대해 추가 확인 중이며 수사 확대 여부를 지속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용인 지역 정가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ITS 사업의 기술적 특성상 고도의 ICT와 관제 서버 구축이 융합되어 있어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이 단가의 적정성을 감시하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 시민사회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특별조정교부금, 부패의 온상이 된 '정치력의 척도'


이번 사태의 심장부에는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 제도가 도사리고 있다. 본래 도지사의 권한으로 기초자치단체의 현안 사업이나 재난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배분되는 예산이지만, 현실에서는 도의원들이 지역구에 예산을 끌어오는 '정치력의 척도'로 변질된 지 오래다. ITS 사업자 김 씨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도의원들에게 뇌물을 공여하며 특정 지자체에 ITS 사업 관련 특별조정교부금이 우선 배정되도록 전방위적 청탁을 벌였다.


이는 부패가 개인의 일시적 탐욕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사업 부서 공무원과 예산 편성권을 쥔 도의원, 그리고 이익을 탐하는 지역 토착 업체가 완벽한 삼각편대를 이루어 공적 자금을 사유화하는 치밀한 시스템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납품 계약을 수주한 업체로부터 재하청의 편의를 위해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도의원이 로비를 받아 예산을 내리꽂는 '하향식 부패'의 전형이다.




 무너진 자정 기능, 그리고 유권자에게 남겨진 선택


경기도의회의 자정 기능은 이미 무너졌다. 윤리특위는 징계안을 방기하고, 총무과는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민원법으로 막아세우며, 의회는 시민의 징계 요구를 종결시킨 직후 해당 의원에게 우수의원상을 수여한다. 이 일련의 흐름은 지방의회가 주권자와의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들만의 성벽 안에 고립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유권자의 선택뿐이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용인시 수지구의 유권자들은 현수막의 크기나 인쇄된 수식어가 아니라, 그 정치인이 위기의 순간에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다가 선거철에만 화려한 공약과 예산 유치를 약속하는 것은, 유권자의 기억력을 기만하는 행위다.




 제도 쇄신 없이 반복되는 비극


이번 사태는 개별 정치인의 윤리 의식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기자는 세 가지 제도적 쇄신을 제언한다.


첫째, 특별조정교부금 배분 구조의 전면적 투명화. 교부금의 신청부터 심사, 선정, 사후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도민에게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과반 이상 참여하는 독립적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특정 의원의 막후 입김이 개입될 소지를 원천 봉쇄하는 시스템만이 제2, 제3의 ITS 비리를 막을 수 있다.


둘째, 시민윤리감사위원회의 독립적 신설. 동료 의원이 동료를 심사하는 현행 윤리특위 체제는 11건의 징계안 방기 사태에서 보듯 이미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완전한 외부 독립 기구에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직권 조사권, 징계 발의권, 경찰 수사 의뢰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공적 질의 의무 응답제의 조례화.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지역 현안에 대해 공식 해명을 요구할 경우, 해당 의원은 14일 이내에 반드시 소명하도록 강제하고, 고의 거부 시 즉각적인 윤리위원회 회부 사유이자 공천 심사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제도적 족쇄를 채워야 한다.




 현수막 뒤에 숨을 자리는 없다


사법부의 추상같은 판결은 부패한 과거에 대한 단죄일 뿐,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선거철에 급조된 '의리'라는 단어 속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듯, 침묵으로 일관한 정치인의 '반드시 건립'이라는 약속 속에서 투명성을 기대할 수 없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대의정치의 본령을 훼손한 이가 다시 유권자 앞에 서서 표를 호소하는 이 부조리를 끝내는 것. 그것만이 부패한 카르텔을 끊어내고 110만 용인시민의 정당한 알 권리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행정 편의주의의 장막 뒤에 숨은 오만한 정치인에게, 이제 더 이상 허락될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