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거짓말 - 제6회 「무자본 인수의 마법」
※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 프롤로그 】
나는 등기부등본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았다.
인터넷 등기소에서 출력한 해맑은 법인의 등기 이력.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의 변동 내역을 A4 용지에 연표처럼 늘어놓았다. 거실 바닥을 가득 채운 종이 위에, 나는 빨간 펜으로 이름을 표시하고, 화살표를 그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바닥 위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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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 관선 이사 등기: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2005.06 이사 추가: A, B
2006.03 이사 추가: C
2007.02 이사 추가: D, E
2008.10 관선 이사 3인 말소
2008.11 고문·자문위원 위촉 (등기 외)
2013.03 정이사 등기: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2013.05 이사장 변경: 조현택
2013.09 감사 변경: 한정호 추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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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연표를 한참 바라보다가, 노트에 한 문장을 적었다.
'이것은 인수합병이다.'
기업의 적대적 M&A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가, 사회복지법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기업 M&A는 돈이 든다. 이것은 돈이 들지 않았다.
【 장면 1 : 0원의 마술 】
사회복지법인을 인수하려면 얼마가 필요한가.
답은, 0원이다.
나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수백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법인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차지한다? 그건 사기도 아니고 마술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이라는 제도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마술의 비밀이 풀린다.
사회복지법인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주식이 없다. 주주가 없다. 따라서 지분을 매입해서 경영권을 확보하는 일반적인 M&A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법인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이사회에 있다.
이사회가 법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예산, 인사, 자산 처분, 사업 계획. 이사회를 장악하면 법인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를 선임하는 것도 이사회다.
여기서 구조적 허점이 발생한다.
기존 이사회가 새 이사를 선임하고, 그 새 이사들이 또 다른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 관할 관청의 승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부 견제가 작동하지만, 그 요건이 '보고'로 바뀌면 견제는 사라진다.
조현택은 정확히 이 구조를 이용했다.
1단계: 관선 이사로 진입 (비용 0원 — 시가 파견)
2단계: 정관 변경으로 견제 장치 제거 (비용 0원 — 이사회 의결)
3단계: 측근을 이사로 선임 (비용 0원 — 변경된 정관에 따라)
4단계: 측근 이사회에서 자신을 정이사로 선임 (비용 0원)
5단계: 이사장 취임 (비용 0원)
5단계 전 과정에서 돈이 든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돈은 들었다. 서울 사무실 운영비, 고문료, 자문료. 그러나 그 돈은 그들의 돈이 아니었다. 법인의 돈이었다. 법인의 돈으로 법인을 삼킨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무자본 인수'라고 이름 붙였다.
자기 자본 투입: 0원.
인수 대상 자산: 추정 수백억 원.
소요 기간: 9년.
수익률: ∞ (무한대).
이것은 범죄인가, 합법인가.
나는 잠시 펜을 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슴 왼쪽에서 이식받은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분노인지, 허탈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의 심장을 빌려 살아가는 나는, 이 구조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9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 법의 빈틈을 파고든 전문가들. 그리고 아무도 막지 않은 시스템.
그것이 이 사건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 장면 2 : 완벽한 신분 세탁 】
나는 조현택의 명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했다.
2004년: 관선 이사 조현택 (평강시 파견)
2008년: 법인 고문 조현택 (법인 위촉)
2013년: 이사장 조현택 (이사회 선임)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명함의 직함이 바뀔 때마다, 그의 법적 지위는 완전히 달라졌다.
관선 이사는 시가 파견한 임시직이다. 시가 해임할 수 있고, 시에 보고 의무가 있다.
법인 고문은 등기 외 직책이다. 법적 권한이 없지만, 법적 책임도 없다. 감시의 사각지대.
정이사는 법인의 정식 경영진이다. 이사회의 의결을 통해 선임되며, 관할 관청에는 보고만 하면 된다. 해임은 이사회만이 할 수 있다.
관선 이사에서 고문으로, 고문에서 정이사로. 두 번의 신분 전환을 통해, 조현택은 '시의 감시를 받는 임시직'에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법인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신분 세탁'이라고 불렀다. 범죄 수익금의 출처를 감추는 자금 세탁처럼, 권력의 출처를 감추는 신분 세탁이었다.
세탁 전: 공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관선 이사
세탁 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정이사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현택은 법인의 정상적인 이사장이다. 이사회에서 선임되었고, 관할 관청에 보고되었고, 등기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 모든 서류가 정상이다.
그러나 그 '정상'을 만들기 위해 9년에 걸친 작업이 있었다는 것을,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다.
범죄에 가까운 구조가 완성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합법이었다. 그러나 그 합법의 외피를 한 겹씩 벗겨 내면, 그 안에는 탐욕과 계획이 도사리고 있었다.
조현택은 바로 그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장면 3 : 시청의 침묵 】
나는 평강시에 질의했다.
정보공개 청구서를 작성하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질문을 만들었다. 관선 이사 파견 경위, 관선 이사 임기 중 활동 보고서, 관선 이사 사임 후 법인 관리 내역, 관선 이사의 정이사 전환에 대한 검토 의견.
2주 후, 평강시의 답변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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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1: 관선 이사 파견 경위
→ 2004년 시설 비위 사건에 따라 관계 법령에 의거
파견하였음.
질의 2: 관선 이사 활동 보고서
→ 해당 문서 부존재.
질의 3: 관선 이사 사임 후 법인 관리 내역
→ 관선 이사 임기 만료 후 법인 자율 운영 체제로
전환되어 별도 관리 내역 없음.
질의 4: 관선 이사의 정이사 전환 검토 의견
→ 이사 선임은 법인 정관에 따른 이사회 고유
권한으로, 관할 관청의 승인 사항이 아닌
보고 사항임. 보고 접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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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답변서를 세 번 읽었다.
관선 이사 활동 보고서: 부존재. 시가 파견한 이사가 4년간 무엇을 했는지, 기록이 없다는 뜻이다. 파견해 놓고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인가.
관선 이사 사임 후 관리: 없음. 시가 파견한 이사가 떠난 뒤, 법인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5년간.
정이사 전환 검토: 보고 사항이므로 접수만 했다. 관선 이사가 법인을 정상화하러 갔다가 법인의 주인이 되어 돌아온 것에 대해, 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나는 추가 질의를 보냈다.
"관선 이사가 정이사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제도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계십니까?"
답변.
"현행 법령상 관선 이사의 정이사 전환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이 한 문장에, 대한민국 사회복지법인 제도의 구조적 결함이 응축되어 있었다. 소방관이 불을 끄러 가서 그 건물의 주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는 것처럼, 법인을 살리러 간 사람이 법인을 삼키는 것을 막는 법이 없었다.
법이 상상하지 못한 일을, 조현택은 해낸 것이다.
【 장면 4 : 친정 체제 】
2013년 이후, 해맑은 법인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겉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간판도 같고, 사업 내용도 같고, 행정 보고도 같았다. 달라진 것은 안이었다.
나는 2013년 이후의 이사회 구성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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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조현택 (변호사)
이 사: 박영준 (평강일보 대표)
이 사: 한정호 (교수)
이 사: 김모 (조현택 사무소 소속 변호사)
이 사: 이모 (평강일보 편집국장)
이 사: 최모 (한정호 대학 후배)
이 사: 장모 (조현택 의뢰인, 건설업)
이 사: 정모 (조현택 의뢰인, 부동산업)
감 사: 송모 (한정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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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의 이사와 1인의 감사. 총 10명.
조현택 직계: 4명 (본인 포함)
박영준 직계: 2명 (본인 포함)
한정호 직계: 3명 (본인 포함, 감사 포함)
10명 전원이 세 사람의 직계였다.
외부 인사: 0명.
사회복지 전문가: 0명.
지역 주민 대표: 0명.
사회복지법인의 이사회에 사회복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변호사, 기자, 교수, 사업가. 그들은 복지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는 것은 법인의 자산이었다.
나는 이것을 '친정 체제'라고 불렀다. 시어머니도 없고, 시누이도 없는 집. 온통 친정 식구만으로 채워진 이사회.
이 체제 아래에서, 이사회는 사실상 조현택의 독백이 되었다. 안건을 조현택이 만들고, 설명을 조현택이 하고, 결정을 조현택이 내렸다. 나머지 8명은 거수기였다. 감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인형이었다.
견제와 균형은 소멸했다.
그리고 이 철옹성 같은 체제가 완성된 직후, 조현택은 첫 번째 큰 거래를 추진했다.
【 클리프행어 】
2014년 봄, 나는 해맑은 법인의 이사회 회의록에서 새로운 안건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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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차 이사회 회의록
안건: 법인 보유 토지 활용 방안 검토의 건
1. 영남도 청산시 소재 법인 보유 토지
(약 17만 평)의 활용 방안을 검토한다.
2. 해당 토지에 대한 장기 임대 사업을
추진하기로 의결한다.
3. 임대 사업의 세부 조건은
이사장에게 일임한다.
의결: 찬성 9, 반대 0. 원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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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 평.
56만 제곱미터. 여의도 면적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거대한 토지. 해맑은 법인이 과거에 기부받은 영남도 청산시의 땅이었다.
이 땅은 본래 사회복지 목적으로 기부된 것이었다. 기부자의 뜻은 분명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이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조현택이 이 땅의 '활용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세부 조건은 이사장에게 일임.
누구에게도 보고할 필요 없이,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조현택 혼자서 17만 평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회의록을 덮고 청산시의 위치를 검색했다. 영남도 북부 산간 지역.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인적이 드문 곳.
누가 17만 평이나 되는 땅을 임대하려 할까.
그리고 임대료는 어디로 갈까.
나는 다음 날 청산시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 땅 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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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회 끝 ─
다음 회 : 「햇빛 아래 검은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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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