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명은 모두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본 작품은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기 위한 사회비판소설입니다.
<내용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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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셋째 주 월요일, 장수영은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잠이 얕아진 것은 폐경 이후의 일이라 특별히 놀랄 것도 없었다. 남편은 출장이었다. 거실로 나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받아 마시고, 습관대로 베란다 창을 열었다.
남교서현 대림아파트 4706동 14층. 장수영이 이 집에 입주한 것은 2019년이었다. 분양가가 만만치 않았지만 남편과 둘이 맞벌이로 간신히 대출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서면 남교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로 자연녹지 구릉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아 있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풀벌레가 울었다. 그 풍경이 좋아서 이 집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창을 열자마자 장수영의 손이 멈추었다.
구릉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릉은 아직 거기 있었다. 다만 그 앞을 가로막는 것들이 생겨났다. 높이 4미터쯤 되어 보이는 하얀 공사 가림막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쳐져 있었고, 가림막 위로 노란 타워크레인의 꼭대기가 삐죽 솟아 있었다. 가림막에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영현시 고시 제2024-187호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및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
장수영은 한참 동안 그 글씨를 읽었다. '지구단위계획'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구역 지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제까지 없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집 창문 바로 앞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물컵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가 아파트 정문 쪽으로 걸었다. 7월의 아침 공기는 이미 눅눅했다. 정문 앞 도로를 건너면 바로 그 가림막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가림막 한쪽에 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 공동주택 건립사업 안내
> 사업명: 서현3지구 공동주택 건립
> 규모: 지하 2층 ~ 지상 22층, 2개동, 203세대
> 사업기간: 2024. 6. ~ 2027. 12. (예정)
> 시행자: 경기도시주택공사
22층. 203세대. 장수영은 그 숫자를 두 번 읽었다. 고개를 들어 자기가 살고 있는 4706동을 올려다보았다. 15층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22층짜리가 들어선다. 바로 옆에. 건물과 건물 사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시 안내판을 읽었다.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문의: 영현시 도시개발과 031-XXX-XXXX"라고 적혀 있었다. 장수영은 휴대폰을 꺼내 그 번호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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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4706동 경로당에서 동대표 회의가 열렸다. 원래 안건은 주차장 노면 보수와 엘리베이터 정기점검 일정이었다. 그런데 장수영이 손을 들었다.
"저,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앞에 공사 시작한 거 다들 아세요?"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동대표 회장인 박노식 씨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아, 그거. 아파트 짓는다는 거?"
"네. 22층짜리요. 우리 동 바로 앞에요."
"나도 오늘 아침에 봤는데, 좀 갑작스럽긴 하더라고."
장수영이 낮에 찍어 온 안내판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주었다. 회의실에 있던 열두 명의 동대표가 돌려 보았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원래 거기 빈 땅 아니었어?" "그 땅이 누구 땅이야?" "아파트가 들어서면 집값 오르는 거 아냐?" "22층이면 우리 동 해가 다 가리잖아."
장수영이 말했다.
"제가 낮에 시청에 전화해봤어요. 도시개발과요. 근데 전화를 네 번이나 돌려서 겨우 담당자랑 통화했는데, '법적으로 문제없이 진행되는 사업입니다'라고만 하고 자세한 건 안 알려줘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게, 도시계획 변경이 이미 다 끝났대요. 올해 3월에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됐고, 5월에 고시가 났다고요."
박노식 씨가 이마를 찡그렸다.
"3월에? 그때 우리가 뭘 안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저도 그래서 물어봤어요. 주민의견 수렴은 했냐고. 그랬더니 작년 12월에 주민공람 공고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시청 게시판하고 영현시 홈페이지에 14일간 올렸다고."
"주민공람? 그게 뭔데?"
장수영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랐어요. 찾아보니까, 도시계획 변경할 때 주민들한테 의견을 듣는 절차래요. 근데 시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리는 게 전부예요. 공고문 제목이 '서현3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및 계획 결정(안) 주민공람공고'래요. 이런 제목을 누가 찾아봐요?"
회의실이 술렁였다. 70대 동대표 한 분이 투덜거렸다.
"그게 주민의견 수렴이야? 거기다 살짝 올려놓고 아무도 안 보면 동의한 거라고 치는 거잖아."
박노식 회장이 한숨을 쉬었다.
"장 대표, 좀 더 알아볼 수 있어?"
"네. 내일 시청에 직접 가보려고요."
3
다음 날 오전 열 시, 장수영은 영현시청 2층 도시개발과 민원실 앞에 앉아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40분을 기다렸다. 창구 직원이 불렀다.
"283번요."
장수영이 자리에 앉았다.
"서현3지구 공동주택 건립 관련해서 왔는데요. 남교서현 대림아파트 바로 옆이거든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요."
직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어떤 내용을 알고 싶으세요?"
"일단 그 땅이 원래 뭐였는지, 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됐는지, 계획 과정이 어떻게 됐는지 전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음, 기본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해당 부지는 원래 자연녹지지역이었고, 도시계획 변경을 통해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이 됐습니다."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요? 그게 쉽게 되는 건가요?"
직원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절차를 거치면 가능합니다."
"어떤 절차요?"
"그건 좀 복잡한데요. 일단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이 올라오고, 관련 부서 협의를 거치고,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됩니다."
장수영이 수첩을 꺼내 적었다.
"그러면 자연녹지에서 바로 2종 주거지역으로 바뀐 건가요?"
"아뇨, 단계가 있습니다. 자연녹지에서 보전녹지, 보전녹지에서 생산녹지, 생산녹지에서 제1종일반주거지역, 제1종에서 제2종... 이런 식으로 종상향이 된 겁니다."
"네 단계나요?"
"네."
장수영은 수첩에 '4단계 종상향'이라고 적고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제가 궁금한 게, 우리 아파트하고 신축 건물 사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건지..."
"정확한 수치는 설계도서를 봐야 하는데, 제가 바로 드리기 어려운 자료예요."
"열람은 되나요?"
"정보공개 청구를 하시면 됩니다."
장수영이 정보공개 청구서를 작성했다. 청구 항목은 다섯 가지였다. 도시계획 변경 결정문,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회의록, 설계도서 및 배치도, 토지 소유 현황, 기부채납 내역.
직원이 청구서를 받으며 말했다.
"처리기간은 10일입니다. 다만, 내용에 따라 일부 비공개가 될 수 있습니다."
"비공개요? 왜요?"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사항이나 개인정보가 포함된 경우에는 비공개 사유에 해당될 수 있어요."
장수영은 그 말의 의미를 나중에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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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 청구 결과는 8일 후에 문자로 왔다.
> [영현시] 정보공개 결정 통지
> 청구하신 5건 중 2건 공개, 3건 비공개 결정되었습니다.
> 사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사항)
공개된 것은 고시문 사본과 사업 개요서뿐이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회의록, 토지 소유 현황, 기부채납 세부 내역은 모두 비공개였다.
장수영은 공개된 사업 개요서를 부엌 식탁 위에 펼쳐놓고 읽었다. A4 용지 열두 장.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용어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 - 용적률: 233.1%
> - 건폐율: 28.7%
> - 최고층수: 22층 (지상)
> - 세대수: 203세대 (59타입 102세대, 84타입 101세대)
> - 기부채납: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48억 원 상당
용적률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다.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총 바닥면적의 비율. 233%라는 것은 땅 넓이의 2.3배 이상을 쌓아올린다는 뜻이었다. 자연녹지에서 이 정도 용적률이 가능하려면 도대체 용도지역이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 건지.
48억이라는 기부채납 금액도 이상했다. 기부채납이란 사업자가 개발 이익의 일부를 공공에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2층짜리 아파트 203세대면 분양 수익이 얼마인 거지? 그중에 48억이면 적은 건지 많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배치도. 배치도는 비공개였지만, 사업 개요서에 작은 약도가 실려 있었다. 장수영은 그 약도를 보며 자기 아파트 4706동의 위치를 찾았다. 신축 건물과의 거리가 수치로 표기되어 있었다.
8m.
장수영은 숫자를 다시 읽었다. 8미터. 자기 아파트 베란다에서 신축 건물 외벽까지 8미터.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줄자를 가져왔다. 거실 폭을 재보니 4미터 조금 넘었다. 거실 두 개 폭. 그 거리에 22층짜리 건물이 벽처럼 서는 것이다.
그날 밤 장수영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우리 집 앞에 22층 아파트 올라오는 거 알아?"
"뭐? 거기 빈 땅 아니었어?"
"나도 그랬는데. 이미 다 결정 났대. 우리 집에서 8미터래."
"8미터? 그게 말이 돼?"
"나도 모르겠어. 근데 시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없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장수영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맴돌았다. 법적으로 문제없다. 법적으로 문제없다.
그 말은, 장수영이 느끼는 이 부당함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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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터넷 카페를 뒤지고, 유튜브에서 도시계획 강의를 듣고,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다. 2주 동안 그렇게 파고들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첫째, 해당 토지는 원래 '맹지'였다. 맹지란 도로에 접하지 않아 건축 행위가 불가능한 땅을 말한다. 도로가 없으니 차가 들어갈 수 없고, 차가 못 들어가니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말하자면 '죽은 땅'이었다.
둘째, 그 죽은 땅을 살린 것은 '완충녹지 해제'였다. 서현3지구 부지와 기존 도로 사이에는 폭 10미터의 완충녹지가 있었다. 이 녹지가 해제되면서 진출입로가 생겼고, 맹지가 비로소 건축 가능한 땅이 되었다. 완충녹지는 원래 인근 주거지역을 공해나 소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었다. 그것을 해제했다.
셋째, 교통 문제. 장수영은 매일 출퇴근길에 한양뉴타워 지식센터 앞을 지났다. 그 건물에서 나오는 차량들이 중앙선을 넘어 불법유턴을 하는 것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해당 구간에는 교통사고 다발구역 현수막이 세 개나 걸려 있었다. 여기에 203세대가 추가되면 차량 수백 대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진출입로는 그 사고 다발구간과 직접 연결될 예정이었다.
넷째, 일조권과 조망권. 4706동은 남향이었다. 8미터 앞에 22층 건물이 들어서면 겨울철 일조 시간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신평초등학교도 부지 인근이었다. 통학로 안전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장수영은 이 내용들을 A4 용지에 정리했다. 글씨를 쓰는 동안 손이 떨렸다. 분노가 아니라 무력감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를 통과했고, 고시가 났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자기는 그 과정을 전혀 몰랐다. 주민공람 공고라는 것을 시청 홈페이지에 14일간 올려놓은 것이 유일한 '주민의견 수렴'이었다.
검색을 더 하다가 하나의 이름을 발견했다. '영현시민연대'. 영현시의 행정을 감시하고 시민 권익을 옹호한다는 시민단체였다. 대표 이름은 김도형. 연락처가 있었다.
장수영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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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은 영현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송지구 서현동 상가건물 3층의 15평짜리 공간이었다. 책상 세 개, 책장 네 개, 복합기 한 대. 벽에는 '영현시 예산 감시 보고서' '시의회 회의록 분석' 같은 제목의 보고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네, 영현시민연대 김도형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가 점점 빨라졌다.
"저, 남교서현 대림아파트에 사는 장수영이라고 하는데요. 저희 아파트 앞에 서현3지구 공동주택이 들어서거든요. 혹시 이 사업에 대해서 아시는 거 있으세요?"
김도형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서현3지구요.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자연녹지 종상향 건이죠?"
"아, 아세요?"
"올해 초에 도시계획 변경 고시가 나왔을 때 목록에서 본 적이 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는데."
장수영이 지난 2주간 조사한 내용을 쏟아놓았다. 4단계 종상향, 완충녹지 해제, 8미터 이격거리, 교통 문제, 정보공개 비공개 처분. 김도형은 수첩에 메모하면서 들었다.
"장 선생님, 정보공개 청구에서 비공개 처분 받으신 항목이 뭐였죠?"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회의록하고, 토지 소유 현황하고, 기부채납 세부 내역이요."
"회의록이 비공개라... 사유가 뭐였죠?"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사항이라고요."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이미 고시까지 나온 건인데 의사결정 과정이라니. 결정이 끝난 거잖아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김도형이 볼펜을 탁탁 두드렸다.
"토지 소유 현황을 비공개로 한 것도 좀 그렇고요. 토지대장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적 장부거든요. 정보공개 청구가 아니라 인터넷 등기소에서 직접 떼면 됩니다."
"아, 그래요?"
"네. 제가 한번 확인해볼게요. 부지 주소가 어떻게 돼요?"
장수영이 주소를 불러주었다. 김도형이 적었다.
"장 선생님, 연락처 남겨주세요. 확인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김도형은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등기소에 접속해 해당 부지의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을 열람했다. 부지 전체면적은 약 12,000제곱미터. 수십 필지로 나뉘어 있었다. 소유자 이름을 하나하나 엑셀에 옮겨 적었다.
김, 이, 박, 문... 다양한 성씨의 이름들이 나왔다. 그런데 옮겨 적다 보니 한 가지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씨 성의 소유자가 유독 많았다. 문병도, 문상훈, 문상미, 문상철. 같은 일가로 보이는 이름들이 필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김도형은 면적을 합산해보았다. 문씨 일가 명의의 토지가 전체 부지의 52%를 차지했다. 여기에 가등기 -- 소유권 이전 전 단계의 임시 등기 -- 가 걸려 있는 필지까지 포함하면 약 70%에 달했다.
김도형의 손이 멈추었다.
문병도. 그 이름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의 서랍을 뒤졌다. 작년에 영현시의회 의원 재산공개 자료를 분석할 때였다. 문상훈 의장의 재산 내역 중 '상속 토지' 항목. 피상속인 이름.
문병도.
김도형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다시 모니터를 향해 몸을 숙이고, 영현시의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의원 프로필. 문상훈. 영현시의회 의장. 5선 시의원. 사진 속의 환한 미소.
그 아래 약력을 읽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위원장 역임.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 역임.
김도형은 다시 토지대장을 펼쳤다. 문병도. 문상훈 의장의 아버지. 이미 작고한 분이었다. 그의 이름이 서현3지구 부지 토지대장 전체에 걸쳐 가장 큰 면적으로 남아 있었다. 상속이 완료된 필지도 있고, 아직 문병도 명의로 남아 있는 필지도 있었다.
맹지였던 자연녹지가 4단계 종상향을 거쳐 22층 아파트 부지로 변신했다. 완충녹지가 해제되어 죽은 땅에 길이 뚫렸다. 그 땅의 70%를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문의 수장은 영현시의회 의장이었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사람이었다.
김도형은 볼펜을 내려놓고 박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은지는 영현시민연대의 정책팀장이었고, 행정학을 전공한 활동가였다.
"은지 씨, 나 지금 좀 큰 걸 발견한 것 같아."
"뭔데요?"
"서현3지구 공동주택 건립 건 알지? 자연녹지 종상향."
"네, 고시 났을 때 잠깐 봤어요."
"토지대장 떼봤는데, 부지 소유의 과반이 문상훈 의장 일가야. 가등기 포함하면 70% 가까이."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문 의장이요?"
"응. 아버지 문병도 씨 명의가 가장 많고, 본인 명의도 있고, 형제 명의도 있어."
"그럼... 자기 땅을 종상향시킨 거예요? 시의회 의장이?"
"아직 단정 짓기는 이르지.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을 봐야 해. 문 의장이 직접 관여했는지, 제척 사유가 있었는지,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지켰는지. 근데 회의록이 비공개야."
"비공개요?"
"응. 주민이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처분이 났어.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이유로."
박은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님,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김도형은 전화를 끊고 다시 토지대장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불빛이 어두운 사무실을 파랗게 비추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송지구의 아파트 불빛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죽은 땅에 꽃이 피었다. 22층짜리 콘크리트 꽃이. 그 꽃의 뿌리가 어디로 뻗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장수영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 위에 김도형은 한 줄을 더 적었다.
문병도 — 문상훈 의장 부친. 서현3지구 부지 최대 소유자.
그 아래에 물음표 하나를 그렸다.
제2회에 계속
[편집자 주] 용어 해설
1. 종상향(種上向)
토지의 용도지역을 더 높은 개발 밀도가 허용되는 등급으로 변경하는 것. 자연녹지지역(건축 제한 多) → 제1종일반주거지역 → 제2종일반주거지역(중층 아파트 가능)으로 올라갈수록 건폐율과 용적률 상한이 높아져 더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토지 가치가 수십 배 상승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역이다.
2. 기부채납(寄附採納)
민간 사업자가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도로, 공원, 녹지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여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기부하는 것. 개발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취지이나, 기부채납 규모의 적정성과 산정 기준의 투명성이 종종 논란이 된다.
3. 완충녹지(緩衝綠地)
주거지역과 공업지역, 도로 등 사이에 소음, 공해, 분진 등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설치하는 녹지. 해제 시 기존 주민의 생활환경 보호 기능이 상실되며, 동시에 접도(도로 접근) 조건을 충족시켜 '맹지'를 개발 가능한 토지로 전환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4. 맹지(盲地)
도로에 접하지 않아 「건축법」상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는 토지. 토지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극히 낮다. 인접 토지의 용도 변경이나 도로 개설을 통해 맹지가 해소되면 토지 가격이 급등하는 특성이 있어, 개발 이익과 관련한 투기의 대상이 되기 쉽다.
5. 주민공람(住民公覽)
도시계획 수립 및 변경 시 주민에게 계획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법적 절차. 통상 14일간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와 관보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실질적 주민 참여가 보장되는지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