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 프롤로그 】
나는 당시의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정보공개 청구. 반려. 이의신청. 부분 공개. 재청구. 또 반려. 행정심판 예고. 그제야 공개.
평강시는 2004년 관선 이사 회의록을 '법인 내부 문서'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하고 있었다. 관선 이사는 시가 파견한 것인데, 그 회의록이 왜 법인 내부 문서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행정심판을 들먹이자 태도가 달라졌다.
2024년 겨울, 마침내 손에 넣은 회의록 복사본.
나는 첫 페이지를 펼쳤다. 2004년 11월, 관선 이사 제1차 회의. 장소: 평강시청 소회의실. 참석자: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배석: 사회복지과 팀장 외 1명.
안건은 다섯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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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안건: 법인 운영 현황 보고
제2호 안건: 입소자 보호 및 재배치 계획
제3호 안건: 시설 개보수 계획 수립
제4호 안건: 정관 검토 및 정비 방안
제5호 안건: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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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부터 3호까지는 정상적인 안건이었다. 법인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입소자를 돌보고, 시설을 개선하는 것. 관선 이사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제4호 안건이었다.
정관 검토 및 정비.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는 안건이다. 비위가 발생한 법인의 정관을 정비하는 것은 정상화 과정의 일부니까. 그러나 나는 이 안건의 세부 내용을 읽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사 선임 요건을 현실에 맞게 완화할 필요가 있음.'
이 한 줄이, 수백억 원짜리 범죄의 첫 번째 벽돌이었다.
【 화려한 등장 】
세 남자의 이력은 화려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조현택 변호사는 중부도에서 손꼽히는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평강시 고문변호사를 5년간 역임했고, 지방 법조인 모임의 부회장이었다. 지역 유지들 사이에서 '조 변'이라고 불리는 인물로, 시장과도 면식이 있었다.
나는 조현택의 경력을 추적했다. 그의 법률 사무소가 처리한 사건 중에 유독 많은 분야가 있었다. 비영리법인 설립 및 등기, 정관 변경, 임원 선임, 자산 관리. 일반 변호사라면 다양한 사건을 맡기 마련인데, 그는 비영리법인 관련 업무에 유난히 집중하고 있었다.
박영준은 평강일보의 창립자이자 대표였다. 평강일보는 주 2회 발행하는 지역 신문으로,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읽어야 하는 신문'으로 통했다. 왜냐하면 박영준이 시청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사 한 줄이 공무원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정호 교수는 중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20년 넘게 재직 중이었다. 평강시 각종 위원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고, 사회복지 관련 행정에 자문을 제공하는 단골 교수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리에 관심 많은 교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복지 전문가'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법조, 언론, 학계.
세 분야의 전문가. 누가 봐도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이 세 사람은 관선 이사로 만난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조현택의 법률 사무소가 처리한 비영리법인 등기 사건에서 한정호가 감사로 이름을 올린 경우가 세 건 있었다. 박영준의 평강일보에 조현택의 법률 사무소 광고가 매주 게재되고 있었다. 한정호와 박영준은 같은 동창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관선 이사 파견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 세 사람을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혹은, 세 사람이 스스로 이 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때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관선 이사 파견 결정이 나기 일주일 전, 조현택이 평강시청 복지국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후일 내가 수소문한 정보였다. 평강시청 복지국장 윤재호. 복지 분야 3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시 복지 관련 인허가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었다. 지역 복지계에서는 '복지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 만남이 우연이었을까?
나는 의문을 접어 두었다.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름 석 자를 수첩에 적어 두었다. 윤재호.
【 찬사 속의 그림자 】
관선 이사들의 초기 행보는 모범적이었다.
첫 석 달 동안 그들은 시설 개보수 계획을 수립하고, 입소자 보호 매뉴얼을 새로 만들었다. 직원 채용 기준을 강화했고, 외부 감사를 자발적으로 도입했다. 매달 운영 현황을 평강시에 보고했다.
평강일보에는 이런 기사들이 실렸다.
'해맑은 법인, 달라진 모습에 입소자 가족 감동'
'조현택 이사장 대행 "입소자 인권이 최우선"'
'전문가 3인, 법인 정상화에 박차'
기사를 쓴 사람은 박영준 본인이 아니었다. 평강일보 소속 기자의 이름으로 나갔다. 그러나 법인 이사가 자기 신문에 자기 법인의 기사를 쓰게 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비정상이었다. 물론 그때는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시청 공무원들도 안심했다. 시신 사건으로 곤란했던 사회복지과 입장에서는, 관선 이사들이 알아서 법인을 운영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보고서도 제때 올라오고, 민원도 줄었다.
"저 분들이 맡으니까 확실히 다르네."
사회복지과 과장의 말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 뒤에서, 보이지 않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회의록을 한 장씩 넘기면서, 그 작업의 흔적을 추적했다.
제1차 회의: 정관 검토 착수
제3차 회의: 이사 선임 요건 완화안 검토
제5차 회의: 정관 변경안 의결
제7차 회의: 변경된 정관에 따른 이사 추가 선임 논의
석 달 사이에 네 번의 안건. 모두 '정관'과 관련된 것이었다.
입소자 보호? 시설 개선? 그것은 무대 위의 연극이었다. 진짜 대본은 무대 뒤에서 쓰이고 있었다.
【 밀실의 대화 】
회의록에는 기록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는 당시 관선 이사회에 배석했던 전직 공무원을 수소문했다. 이미 퇴직한 사람이었다. 만나는 데 오래 걸렸고, 만나서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에서야,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의가 두 번 있었어요."
"두 번이요?"
"공식 회의가 끝나면, 시청 직원들은 나가라고 했어요. 그 다음에 자기들끼리 회의를 또 했어."
"그건 회의록에 안 남아 있잖아요."
"당연히 안 남겠죠. 우리가 나가면 문을 닫았으니까."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세요?"
전직 공무원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한 번은, 문이 덜 닫혀 있었어요. 복도에서 서류 정리하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어."
"뭐라고 하던가요?"
"조 변호사가 그랬어요. '정관부터 바꿔야 한다. 이사 선임 요건을 우리한테 유리하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우리가 직접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 그런 취지였어요."
"그럼 다른 두 사람은?"
"박 대표가,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어요. 조 변호사가 '관선 이사 임기가 3년이니까, 3년 안에 정관 바꾸고, 우리 사람 심어 놓고, 그 다음에 우리가 정이사로 취임하면 된다'고. 한 교수는 '5년이면 충분하다'고 했고."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조 변호사가 한 번은 이런 말도 했어요. '윤 국장님이 추천해 주셨으니 실수하면 안 돼.' 평강시 복지국장 이야기 같았어요."
나는 귀가 번쩍 열렸다. 윤재호. 또 그 이름이었다.
나는 펜을 놓았다.
5년.
그들은 처음부터 5년짜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관선 이사로 들어와서, 정관을 바꾸고, 자기 사람을 심고, 임기가 끝나면 정이사로 취임한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인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계획.
수백억 원대의 법인 자산을,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차지하는 계획.
무자본 M&A.
기업 인수합병에서나 쓰이는 용어가, 사회복지법인에 적용되고 있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AI 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첫 번째 벽돌 】
나는 정관 변경 과정을 하나씩 추적했다.
해맑은 법인의 원래 정관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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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이사의 선임)
이사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선임하되,
관할 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사 정수는 7인으로 하며,
이사 중 3분의 1 이상은
사회복지 관련 경력을 가진 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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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관청, 즉 평강시의 승인을 받아야 이사를 선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사 중 최소 3명은 사회복지 경력자여야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외부 세력의 법인 장악을 막는 안전장치였다.
조현택은 이 안전장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2005년 3월, 제5차 이사회. 정관 변경안이 상정되었다.
변경 내용:
1. '관할 관청의 승인' → '관할 관청에 보고'
2. '사회복지 관련 경력을 가진 자' 요건 삭제
3. 이사 정수 7인 → 9인으로 확대
승인에서 보고로. 한 글자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만들었다. 승인은 관청이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이고, 보고는 통보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사회복지 경력 요건 삭제. 이제 변호사도, 신문사 대표도, 교수도 아무 제한 없이 이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사 정수 확대. 7인에서 9인으로. 새로 추가되는 2석을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자리.
나는 이 변경안이 어떻게 통과되었는지 확인했다. 의결 과정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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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 이사: 3인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찬성: 3인
반대: 0인
결과: 원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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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 이사 3명이 모여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관 변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다른 이사가 없었으니까. 관선 이사 체제에서는 그들 세 명이 곧 이사회 전부였다.
그리고 이 변경안은 평강시에 '보고'되었다.
평강시 사회복지과는 보고를 접수했다.
끝이었다.
누구도 막지 않았다. 누구도 이것이 법인 탈취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혹은,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식받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분노인지, 흥분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심장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 파헤쳐라. 끝까지 추적해라.
나는 노트에 적었다.
'첫 번째 벽돌: 정관 변경 (2005.3)
- 이사 선임 요건 완화
- 관청 승인 → 보고로 변경
- 이사 정수 확대
이것이 수백억 원짜리 범죄의 기초 공사였다.'
【 클리프행어 】
석 달 후, 나는 한 가지 더 발견했다.
해맑은 법인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한 것이다. 법인 등기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수수료 1,000원. 나는 인터넷 등기소에서 해맑은 법인의 등기 이력을 출력했다.
2004년 10월: 관선 이사 3인 등기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2005년 6월: 이사 2인 추가 등기 (○○○, ○○○)
2006년 3월: 이사 1인 추가 등기 (○○○)
2007년 2월: 이사 2인 추가 등기 (○○○, ○○○)
정관 변경 후 불과 2년 만에 5명의 새 이사가 등기되었다. 9인 정원 중 8석을 채운 것이다. 나는 새로 등기된 5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한 명은 조현택의 법률 사무소 소속 변호사였다.
한 명은 박영준의 평강일보 편집국장이었다.
한 명은 한정호의 대학 후배였다.
나머지 두 명은 조현택의 의뢰인이었던 사업가들이었다.
전원, 세 사람의 측근이었다.
나는 등기부등본 출력물을 바닥에 늘어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관선 이사로 들어와서, 정관을 바꾸고, 자기 사람으로 이사회를 채우고.
다음 수순은 뻔했다.
관선 이사 임기가 끝나면, 자기들이 채워 넣은 이사회에서 자기들을 '정이사'로 선임하는 것이다. 관청의 승인도 필요 없다. 보고만 하면 된다. 정관을 그렇게 바꿔 놓았으니까.
투입 비용: 0원.
획득 자산: 수백억 원대.
나는 조현택이라는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 정장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50대 남자.
그 웃음 뒤에 이런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첩에 적었다.
'5년만 기다려. 그러면 우리가 주인이야.'
그것은 조현택이 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니, 반드시 했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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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끝 ─
다음 회 : 「복지대통령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