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오후, 수원 영통구 도청로 경기도의회 청사 앞. 유리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근조화환이 겨울 바람에 흔들렸다. 화환 리본에는 "말단 공무원만 죽이지 말라", "혜택은 의원이, 처벌은 공무원이", "근조화환을 숨겨도 책임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각 본부·지부에서 보낸 화환들이다. 지난 1월 20일 국외출장비 의혹 수사 과정에서 30대 공무원이 숨진 지 20일이 지났지만 경기도의회를 향한 추모와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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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기도의회 청사 1층 외벽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각 본부·지부에서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놓여 있다. 화환에는 "경기도의회는 공무원 죽음 진상 규명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 경인블루저널>

 

 



■ 경찰 조사 다음 날, 30대 공무원이 숨졌다


사건의 발단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전국 지방의원 국외출장 점검이었다. 권익위는 2022년 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전국 지방의회 국외출장을 분석한 결과, 915건 중 405건(44.2%)에서 항공권 위·변조를 통해 약 18억 원이 부당 유용된 사실을 적발하고 관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기도의회를 포함한 19개 경기도 내 지방의회가 수사선에 올랐다.


수법은 이랬다. 지방의원들이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처럼 영수증을 발행한 뒤 실제로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차액을 출장지에서 식비 등 명목으로 추가 지출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이 관행적 처리의 책임이 실무를 담당한 하위직 공무원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 서무 담당 7급 공무원 A씨(30)는 이 의혹의 피의자가 됐다. A씨는 2025년 5월 1차 경찰 조사를 받았고, 2026년 1월 19일 오후 수원영통경찰서에 다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약 1시간 30분간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20일 오전, 용인시 수지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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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택은 의원이, 처벌은 공무원이"


공무원 사회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비대칭 수사'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월 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도의회 국외출장비 의혹으로 입건된 도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사망한 A씨를 포함해 경비 처리 실무를 맡았던 직원 10여 명만 입건된 상태다. 경찰은 "의원들이 과다 청구에 관여하거나 사전 인지·공모했다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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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노 전국 각 지부에서 보낸 근조화환이 경기도의회 청사 측면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공무원 동지를 잃은 비통한 심정이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은 양심의 소리를 들어라" 등의 리본 문구가 보인다. © 경인블루저널>

 

 

전국에서 수사가 진행된 19개 경기도 내 지방의회 중 14곳은 이미 검찰 송치 또는 불입건 종결됐다. 이 중 지방의원이 송치된 사례는 공직선거법 위반(불법 기부행위) 혐의의 평택시의원 11명과 사기·사문서 변조 혐의의 안양시의원 6명뿐이다. 나머지 의회에서는 모두 실무 공무원만 형사 책임을 떠안았다. 전공노는 이를 두고 "혜택은 의원이, 처벌은 공무원이 받는 구조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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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의 벽: 근조화환, 포스트잇, 분향소


A씨의 사망 이후 경기도의회 청사는 추모 공간으로 변했다. 전공노 전국 각 본부·지부에서 보낸 근조화환은 1월 28일부터 쇄도하기 시작해 30일에는 220여 개가 1층 로비와 청사 외벽, 경기도청사까지 넘쳐났다.


논란은 도의회가 화환을 치우면서 더 커졌다. 도의회 사무처는 "1층 로비에서 화예 조형작품 전시회가 있었고, 보낸 이가 명시되지 않은 화환을 민원인 접견실로 옮겼다"고 해명했으나, 전공노와 시민들은 "책임을 숨기려는 행태"라고 반발했다. 도의회 측은 항의가 이어지자 화환을 다시 원위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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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회 청사 입구 표지판에 시민과 공무원들이 붙인 추모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형형색색의 메모지에 적혀 있다. © 경인블루저널>

 


경기도의회 표지판에는 시민과 동료 공무원들이 남긴 추모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형형색색 메모지에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글씨가 가득했다. 청사 한쪽에는 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청지부가 마련한 분향 테이블과 추모 화환이 놓여 있었고, "혜택은 의원이" 등의 문구가 담긴 피켓과 의원들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풍자 포스터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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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회 청사 입구에 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경기도청지부가 설치한 추모 분향소. 근조화환과 함께 "혜택은 의원이!" 등의 피켓이 세워져 있다. © 경인블루저널>



■ 9일간의 침묵, 그리고 공허한 사과


A씨가 숨진 뒤 경기도의회 지도부는 9일간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다. 사무처는 유족의 뜻을 이유로 부고를 내부 게시하지 않았고, 언론에도 사건 언급 자제를 요청했다. 공무원 사회 안팎에서 "조직이 책임을 회피하며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김진경 의장은 1월 29일에야 첫 입장문을 냈다.


김 의장은 "다수의 의회 공직자가 수사선상에 오르며 겪었을 심리적 고통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낀다"며 "수사 대상 직원들이 홀로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물밑에서 지원해왔으나 비극을 막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의정국장을 단장으로 한 전담 TF를 구성해 국외출장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공노와 시민사회는 "뼈 깎는 성찰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반응이었다. 전공노 경기도청지부는 1월 30일 경기도청 앞에서 '경기도의회 사망 공무원 추모 모임'을 열어 구조적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 총체적 위기: ITS 뇌물부터 명동 호텔까지


국외출장비 의혹은 경기도의회가 직면한 위기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경기도의회의 2025~2026년은 지방자치 역사에 유례없는 복합 스캔들로 점철되고 있다.


바로 오늘(10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ITS(지능형교통체계) 사업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현직 도의원 3명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박세원 도의원은 징역 10년과 벌금 3억 원, 이기환 전 도의원은 징역 8년과 벌금 2억 5,000만 원, 정승현 전 도의원은 징역 3년과 벌금 4,000만 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도의원이 가진 권한을 광범위하게 이용해 사회적 신뢰를 현저히 훼손했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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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게이트로 전·현직 도의원 9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데 이어, 양우식 운영위원장은 사무처 직원에 대한 성희롱으로 모욕 혐의 불구속 기소됐음에도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는 최하위인 5등급을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기획재정위원회와 운영위원회가 서울 명동 호텔에서 업무보고를 진행하려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은 "국외여비건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고 직원들이 수사를 받는 와중에 서울 호텔에서 업무보고를 논의했다는 것은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과 문제의식조차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여론이 들끓자 두 상임위는 2월 5일 일정을 전면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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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과제: 구조 개혁 없는 사과는 공허하다


전공노는 도의회의 사과와 TF 구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수사와 감사, 업무지시와 관리체계 전반에서 어떤 구조적 문제와 책임 방기가 있었는지 밝히라는 요구다. 특히 수사 대상이 된 직원들이 홀로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조직적 보호 체계를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도의회가 스스로 정치개혁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관련 의원 최고 수위 징계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국외출장 제도에서 의원과 실무자 간 책임 분배의 구조적 결함을 방치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실비 정산 제도의 전면 개편과 함께 지방의회 감사·윤리 시스템의 실질적 작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월 9일 오후, 경기도의회 청사 앞에는 여전히 근조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 포스트잇이 붙은 표지판 앞을 지나는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메모를 읽었다. 분향소의 국화꽃 향이 찬 바람에 실려 왔다. 30대 공무원의 죽음이 남긴 질문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경기도의회는 이 질문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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