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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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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2024년 가을.
강민호는 사무실 바닥에 종이를 펼쳐 놓고 앉아 있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습관처럼 책상 위 약통에서 알약 두 개를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아침저녁으로 빠뜨리면 안 되는 면역억제제.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이었다.
원룸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류 더미 사이에서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숫자였다.
평강시 사회복지과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아낸 서류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해맑은 복지원에 지급된 보조금 내역이었다. 복사 상태가 나빠 글자가 뭉개진 부분도 있었고, 일부는 '보존 기간 경과로 폐기'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강민호는 형광펜으로 숫자 하나를 동그라미 쳤다.
47.
2000년 1월 보고서. 입소자 47명.
2001년 3월 보고서. 입소자 47명.
2002년 8월 보고서. 입소자 47명.
2003년 6월 보고서. 입소자 47명.
4년 동안,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정확히 47명.
복지시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입소자는 퇴소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오기도 하고,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하고, 사망하기도 한다. 숫자는 항상 변한다.
그런데 47이라는 숫자가 60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강민호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남의 심장이 뛰는 것을. 3년 전 이식받은 이 심장은 아직도 가끔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심장은 분명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무언가 있다.
【 죽은 자의 이름으로 】
나는 보조금 지급 내역서를 한 장씩 넘기면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해맑은 복지원은 사회복지법인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입소자 1인당 월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2000년 기준으로 1인당 월 약 35만 원. 2003년에는 38만 원으로 올랐다.
47명 × 38만 원 = 1,786만 원. 매월.
1년이면 2억 1,432만 원.
문제는, 47명 중 최소 1명은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입수한 평강시 사회복지과의 내부 문서에는 '정○식'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1999년 12월 이후로 어떤 의료 기록도 없고, 주민등록상 주소 변동도 없고, 건강보험 이용 내역도 없는 사람. 그런데 해맑은 복지원의 보고서에는 2004년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매달 '재원 중'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60개월.
35만 원에서 38만 원 사이의 보조금이 60번.
합산하면 대략 2,200만 원.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5년 동안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나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세 번을 다시 확인했다. 정보공개로 받은 보조금 지급대장, 시설 보고서, 입소자 현황표. 세 가지 서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영식은 서류 안에서 5년을 더 살았다.
【 매달 도장을 찍은 사람들 】
보조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서류를 작성하고, 누군가 검토하고, 누군가 승인해야 집행된다.
나는 보조금 집행 과정을 역추적했다.
먼저, 해맑은 복지원의 관리인이 매달 '입소자 현황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름, 나이, 장애 등급, 입소 일자가 기재된 명단이다. 이것을 평강시청 사회복지과에 제출한다.
그 다음, 사회복지과 담당 주무관이 보고서를 검토한다. 서류에 하자가 없으면 결재를 올린다. 팀장이 결재하고, 과장이 결재하면 보조금이 집행된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절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누구도 실제로 시설을 방문하여 입소자들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해맑은 복지원에 대한 현장 점검 기록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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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시 사회복지과 정보공개 결정 통지서
요청 내용: 해맑은 복지원 현장 점검 기록
(2000.1 ~ 2003.12)
결정: 부존재
사유: 해당 기간 현장 점검 기록이 존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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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안 단 한 번의 현장 점검도 없었다.
누구도 그 산 중턱의 시설까지 올라가 보지 않았다. 누구도 입소자 명단에 적힌 47명이 실제로 47명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매달 서류만 접수하고, 매달 도장만 찍고, 매달 보조금만 집행했다.
나는 화가 나는 것보다 허탈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 현장에 갔더라면, 5년이 아니라 몇 달 만에 모든 것이 드러났을 것이다.
정영식은 살아 돌아올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이 5년 동안 사기에 이용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서류의 무덤 】
나는 당시 사회복지과 담당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해맑은 복지원 보조금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은 세 번 바뀌었다. 이 주임, 김 주임, 그리고 박 주임. 나는 세 사람의 인사 기록을 추적했다. 이 주임은 퇴직했고, 김 주임은 타 부서로 이동한 후 역시 퇴직했다. 박 주임만이 아직 평강시청에 재직 중이었다.
나는 박 주임을 만날 수 있었다.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센 5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시청 구내식당에서 나와 마주 앉았다.
"그때 일을 기억하시나요?"
"해맑은? 기억하죠. 시신 나왔잖아요."
"보조금 담당이셨잖아요. 현장 점검은 안 하셨습니까?"
박 주임의 얼굴이 굳었다. 밥을 뜨던 숟가락이 멈췄다.
"그때는 지금이랑 달랐어요. 시설이 산 위에 있었고, 차도 잘 못 올라가고. 전임자한테 인수인계받은 대로 서류만 처리했지."
"서류에 정영식이라는 사람이 계속 있었잖아요. 이미 죽은 사람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시설에서 보내온 명단에 이름이 있으면 있는 거지."
"확인할 의무는 없었습니까?"
박 주임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다들 그랬어요. 사회복지 쪽은 인력도 부족하고 시설도 많고. 서류가 올라오면 형식만 보고 결재한 거야. 내용까지 하나하나 따질 여유가 없었어."
"5년이잖아요. 5년."
"……"
"5년 동안 죽은 사람 이름으로 보조금이 나갔습니다. 그동안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박 주임은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강 선생. 그때 기록은 다 수기였어요. 전산 시스템이 없었다고. 서류철에 끼워 넣고, 캐비닛에 넣어 두고, 그렇게 관리했어. 그 캐비닛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어디 있는데요?"
"없어졌어요. 2005년에 사무실 이전하면서 구 기록은 전부 폐기했대. 전산화한다고."
"전산화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지. 전산화한다고 해 놓고 안 한 거야. 결국 종이 서류는 버리고, 전산 기록은 안 만들고. 아무것도 안 남은 거지."
나는 가만히 박 주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도, 분노도, 후회도 아닌 어떤 감정이 떠 있었다. 아마 체념이었을 것이다. 20년이 넘은 일에 대해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겠냐는.
서류는 사라졌다. 기억도 흐릿해졌다. 남은 것은 내가 정보공개로 받아낸 보조금 지급대장 몇 장뿐이었다.
그러나 그 몇 장의 서류가 말해 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돈을 받았고, 누구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 60개월의 거짓 】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서류를 시간순으로 늘어놓았다.
2000년 1월. 보조금 17,390,000원 집행.
2000년 2월. 보조금 17,390,000원 집행.
2000년 3월. 보조금 17,390,000원 집행.
12개월이 한 줄, 5줄이 생겼다. 60개의 숫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빨간 펜을 들어 각 달의 보조금에서 1인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따로 적었다. 35만 원, 35만 원, 35만 원. 2002년부터는 36만 원, 2003년부터는 38만 원.
합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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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보조금 추정 내역
2000.01 ~ 2001.12 (24개월)
→ 35만 원 × 24 = 8,400,000원
2002.01 ~ 2002.12 (12개월)
→ 36만 원 × 12 = 4,320,000원
2003.01 ~ 2003.12 (12개월)
→ 38만 원 × 12 = 4,560,000원
2004.01 ~ 2004.06 (6개월, 시신 발견 전)
→ 38만 원 × 6 = 2,280,000원
합계: 19,5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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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천만 원.
액수만 보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존재를 위조하여 국민의 세금을 편취한 사기였고, 시신을 방치한 범죄의 은폐였으며, 행정 시스템 전체의 실패를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다시 입소자 명단을 들여다보았다. 47명 중 정영식만이 문제였을까? 서류상 47명이었지만 실제로 기도하고 있던 사람은 44명이었다는 1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빈 이름들은 없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구할 수 없었다. 서류가 폐기되었고, 기억은 흐릿해졌고, 당사자들은 흩어졌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정영식 1명은 확인됨. 나머지 의문의 3명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 필요. 그러나 원본 서류 폐기로 증명 불가능할 가능성 높음.'
펜을 놓고, 창밖을 보았다. 평강시의 밤은 조용했다. 어딘가에서 해맑은 복지원의 터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야산 중턱, 시설이 있던 자리.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하 창고의 철문은 아직도 닫혀 있을까.
【 클리프행어 】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2004년 6월, 해맑은 복지원에서 시신이 발견된 이후 평강시가 취한 조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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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 해맑은 복지원 운영 정지 처분
2004년 8월 - 경찰 수사 착수 (결과 불명)
2004년 9월 - 평강시 관선 이사 파견 결정
2004년 10월 - 관선 이사 3인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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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 이사 3인.
법인을 정상화하기 위해 파견된 세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조현택. 변호사. 평강시 고문변호사 경력.
박영준. 언론인. 평강일보 대표.
한정호. 교수. 중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법조, 언론, 학계.
나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안심했다. 변호사, 언론인, 교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법인을 맡는다면 정상화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그들은 구원자가 아니었다.
복지원의 비극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시신을 숨긴 자들보다 더 교활하고, 더 체계적이고, 더 거대한 범죄가 이 세 남자의 악수와 함께 설계되기 시작했다.
나는 노트 위에 적었다.
'조현택, 박영준, 한정호.'
세 남자의 이름 아래 밑줄을 세 번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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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끝 ─
다음 회 : 「시신이 말해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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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은 모두 가명이며, 실존하는 인물·단체와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