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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G3’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성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대만이 우리보다 먼저 미래의 문을 하나 열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2027년도 중앙정부 예산안에 2,357억 대만달러를 편성해 국민 1인당 1만 대만달러, 우리 돈 약 44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의회의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지급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만 정부가 이 구상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실제 국가 예산의 항목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라이 총통은 이를 국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AI 배당(AI dividend)’이라고 표현했다.

그 배경에는 놀라운 경제성장이 있다. 대만 통계당국은 2026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11.05%로 올렸다. 1987년 이후 3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출 증가율 전망도 41.07%에 이른다. AI, 고성능 컴퓨팅,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폭발하면서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ICT 산업이 경제 전체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AI 때문에 나라가 더 부유해졌다면 그 성과가 반도체 기업과 주주, 고소득 기술인력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라이 총통은 기술산업의 최상층만 볼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하는 모든 가정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는 내년도 세입 전망이 늘어난 만큼 현금 지급을 포함하고도 균형예산과 사실상 신규 순차입 없는 재정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AI를 이야기한다.

AI G3를 외친다. AI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한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만들고 GPU를 확보한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AI 반도체에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만 해도 2026년 5조1천억 원을 AI 전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정부는 AI를 산업과 공공부문 전반에 확산시키겠다는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AI·반도체 호황의 혜택도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0%로 높였다. 글로벌 AI 수요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2027년 정부 지출 규모는 8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고, 정부는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핵심 투자 분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AI 산업을 키울 때는 ‘국가적 투자’라고 말하면서, AI 산업에서 성과가 발생했을 때는 왜 ‘국민의 몫’이라는 말이 갑자기 희미해지는가.

기업이 투자했으니 기업이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주주가 위험을 부담했으니 배당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AI·반도체 산업은 기업 혼자 만든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도로와 용수와 전력망을 국가가 구축한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세제 혜택을 준다. 연구개발비를 지원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인재를 양성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GPU와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한다.

즉 한국의 AI 산업에는 거대한 사회적 투자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사회가 함께 위험을 부담했다면 사회도 성공의 일부를 배당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더 답답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이 질문을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5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AI와 반도체 산업 호황에서 발생한 국가의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배당금’ 구상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기간 국민 전체가 구축해 온 산업적·사회적 기반의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설명에 나섰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정부가 빼앗아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라 AI 산업의 초과이윤으로 국가에 추가로 들어오는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취지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의미 있는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논쟁은 곧바로 ‘사회주의냐 아니냐’, ‘기업 이익을 빼앗는 것이냐 아니냐’라는 이념공방으로 변질됐다. 증시 논란까지 겹치자 청와대는 정책실장의 개인적 의견이라는 취지로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두 달 뒤 정부가 내놓은 선택은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AI·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나는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넣어 미래·청년·지방·교육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미래에 재투자하는 선택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것 역시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만과 한국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대만은 투자와 국민배당을 동시에 하겠다고 한다.

2027년 기술개발 예산도 늘리고 국방비도 늘리면서 별도로 2,357억 대만달러의 국민 현금배당을 예산에 넣었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과 현재의 국민에게 경제성장의 몫을 돌려주는 것을 양자택일로 보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먼저 더 투자하면 언젠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익숙한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대기업이 성장하면 국민에게 돌아온다고 했다.

수출이 늘어나면 국민이 잘살게 된다고 했다.

반도체가 세계 1등이 되면 나라가 부자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나라는 부자가 됐다. 기업도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묻는다.

그래서 내 삶에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AI 시대에는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하다.

AI는 단순히 새로운 산업 하나가 아니다. 인간의 노동 자체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다. 생산성은 크게 올라가지만 그 생산성 향상의 수익이 자본과 플랫폼, 기술기업에 집중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AI 시대의 국가정책은 ‘누가 가장 좋은 AI를 개발하느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AI가 만들어낸 부를 어떤 방식으로 국민 전체가 공유할 것인가까지 설계해야 한다.

한국이 당장 대만을 따라 국민 한 사람에게 44만 원씩 지급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만은 올해 11.05%라는 기록적인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고, 한국은 3% 수준이다. 재정 상황도 다르다. 서로 다른 경제 여건을 무시하고 현금 지급 액수만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도는 지금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하는 법인세가 장기 평균을 크게 초과하면 그 증가분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국민 AI 자산기금’에 자동 적립할 수 있다.

정부가 AI 기업이나 국가 AI 인프라에 직접 투자해 얻은 지분 수익과 배당도 이 기금에 넣을 수 있다.

국가가 투자한 AI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사용료나 투자수익도 국민 공동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이 쌓이면 그 운용수익 일부를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배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의 이익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얻은 이익을 국가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국민은 납세자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주주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미래 산업에 투자한다면 국민은 단순한 세금 납부자가 아니라 그 투자의 실질적인 출자자라고 볼 수도 있다.

출자자가 있는데 배당이 없는 구조가 과연 정상적인가.

한국은 ‘AI 기본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에도 AI 기본사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기본사회위원회에서도 국가가 확보한 공적 지분에서 나오는 수익을 국민배당으로 환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보고서가 아니다.

위원회도 아니다.

또 하나의 거창한 선언도 아니다.

법률과 계좌와 숫자다.

AI 초과세수가 얼마 발생하면 그 가운데 얼마를 국민의 공동자산으로 적립할 것인지, 국가가 AI 산업에 투자해 얻은 수익 가운데 얼마를 국민에게 귀속시킬 것인지, 언제 어떤 기준으로 배당할 것인지를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AI 국민배당’은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가 된다.

대만의 44만 원은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AI 시대의 성장은 당신의 몫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가 세계 AI 3대 강국을 꿈꾼다면 이제 기술 순위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GPU 숫자도 중요하고 데이터센터도 중요하며 반도체 공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짜 AI 선진국을 결정하는 기준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AI가 만들어낸 부가 국민에게 어떻게 돌아가는가.

대만은 적어도 그 질문에 예산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직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AI 국민배당’이라는 제법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놓고 논란이 일자 한발 물러섰다. 다시 투자를 이야기하고, 다시 성장부터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성장은 목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성장의 목적이다.

AI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반도체만도 아니다.

기술의 성과를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다.

대만이 그것을 완성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2027년 예산안은 의회의 심의를 남겨두고 있고 현금 지급 자체에 대한 포퓰리즘·물가·구조개혁 논쟁도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가능한가’를 토론하는 단계를 넘어 ‘얼마를 예산에 넣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 배당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국민이 함께 만든 AI 시대의 부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국민에게 돌려줄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 기본사회’도, ‘AI G3’도 결국 국민에게는 또 하나의 거대한 구호로 남을 것이다.